'서울의 닷컴' 번지는 위기론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 벤처기업인 A사는 이달 초 벤처캐피털로부터 "시장 분위기상 계획했던 투자를 당분간 보류한다" 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 3월 설립돼 아직 매출이 없는 상태에서 자금 수혈을 받지 못하자 A사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이 회사 李모 상무는 "일단 서버와 인력을 충원하는 것을 연기했지만 조만간 투자를 받지 못하면 계획했던 사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 이라고 말했다. ''닷컴 위기론'' 이 퍼지고 있다.

''서비스와 아이디어''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 순수 인터넷 닷컴기업들의 위기가 심각해 일부에서는 "올 여름과 가을이 두렵다" 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 화려하게 코스닥에 등록한 닷컴기업의 주가는 대부분 반토막에도 못미친다.

대표적 황제주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주가는 연중 최고가(34만5백원) 의 6분의1인 6만9천원대며, 새롬기술도 최고가(28만2천원) 의 9분의1인 3만3천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중앙일보가 최근 주요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CEO) 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닷컴 위기'' 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현 상황이 ''큰 위기'' 라고 대답한 CEO가 31%, ''약간 위기'' 라고 응답한 최고경영자가 42%에 달하는 등 전체의 73%가 닷컴 위기론에 동의했다.

통신장비.소프트웨어 개발 등 오프라인 사업이 뒷받침된 정보통신 벤처기업보다 아이디어만 갖고 사업에 뛰어든 순수 인터넷 기업의 경우 더욱 심각한 상태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신재정 사무국장은 "일부 회원사의 경우 직원 월급을 제대로 못 준다고 호소할 정도" 라고 전했다.

이 상황이 6개월 정도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 응답자들이 45.9%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응답자의 44.4%는 ''닷컴기업의 실적 부진'' 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38.9%는 ''닷컴기업에 대한 사회적 반감으로 위기가 확대해석된 것'' 이라고 답해 CEO들은 사회 일각에 퍼진 ''닷컴 불신론'' 을 우려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정호 박사는 "일부 머니게임에 열중한 닷컴기업 탓에 벤처가 창출하는 부(富) 를 정당한 근로소득이 아닌 투기와 정보를 통한 불로소득으로 인식하면서 반(反) 벤처 정서가 생겨 위기가 더욱 확산된 것" 이라고 지적했다. 창투사나 엔젤 등으로부터의 투자 유치도 급속히 냉각됐다.

응답기업 중 39개사가 올해 투자를 받았지만 대부분 1, 2분기에 그쳤고 3분기(7~9월) 에 투자를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이에 따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해, 앞으로 닷컴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업체는 기업 인수.합병(M&A) 과 해외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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