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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아들과 캠핑약속 못 지킨 ‘미운 아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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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재만 소방위(左), 한상윤 소방장(右)

지난 3일 낮 12시쯤 경기도 평택시 송탄소방서 119구조대 사무실로 택배 꾸러미가 도착했다. 주문자는 한상윤(32) 소방장이었다. 택배상자 안에는 캠핑용 테이블이 들어 있었다. 내용물을 확인한 동료 소방관들의 흐느낌이 사무실의 침묵을 깼다. 한 소방장은 3시간 전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순직했다. 도착한 테이블은 한 소방장이 네살배기 쌍둥이 아들과 캠핑을 가려고 구입한 것이었다. 최창만 송탄소방서 119구조대장은 “거센 불길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24시간 교대근무 때문에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을 늘 미안해하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한 소방장과 함께 현장에 출동했던 이재만(40) 소방위도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주검이 돼 돌아왔다. 이 소방위는 15년 동안 불을 다스려 온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그는 최근까지 경기도소방학교에서 화재현장팀 전임교관으로 근무하며 신임 119대원들을 교육했다. 그의 형 재광씨도 화성소방서에서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 소방위의 아버지 이달희(69) 목사는 “아침에 목욕탕을 가려다 화재 현장이 보이길래 아들을 불러내 얼굴이라도 보려다 방해가 될까 봐 참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이날 오전 8시47분 평택시 서정동 가구전시장에서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 작업을 하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불은 2층짜리 전시장 건물 808.48㎡를 모두 태우고 한 시간 만에 꺼졌다. 임정호(49) 송탄소방서장은 “전시장 열기가 너무 세 구조대원들이 일단 철수하던 중이었는데 두 대원이 변을 당했다”고 밝혔다.

 소방관들의 희생은 올 들어 벌써 6명째다. 화재 진압과 구조활동 과정에서 다친 공무상 부상자까지 더하면 한 해에 300명이 넘는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5년(2006~2010)간 33명이 순직하고 1609명이 부상을 입었다. 소방관들은 붕괴 등 위험 징후가 보이면 현장에 접근하지 말라고 교육받는다. 그러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침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수원남부소방서의 한 소방관은 “구조에 실패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돌보기가 쉽지 않다. 소방공무원들이 항상 고민하는 딜레마”라고 말했다. 이날 김황식 국무총리와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들의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조문했다.

 한편 두 소방관의 영결식은 5일 오전 10시 송탄소방서장으로 엄수된다. 시신은 수원연화장에서 화장한 뒤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고인들에게는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평택=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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