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김영완 사건,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10년 가까이 미국에 도피하고 있던 김영완씨가 귀국해 검찰수사를 받았다. 그는 김대중(DJ) 정부 당시 현대 비자금 및 대북송금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던 인물이다. 2003년 현대그룹의 비자금을 DJ정권의 대북송금 및 정치자금으로 건네는 과정에 전달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현대비자금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고,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현 민주당 의원)도 양도성예금증서(CD)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수사 중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이 자살함으로써 대부분 제대로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덮여 있다.

 김씨는 현대그룹과 권 전 고문 사이에서 이 돈을 중개했고, 박 전 장관의 CD를 보관했다고 시인하는 등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김씨에 대한 수사 재개가 관심을 끄는 것은 현대비자금 관련 의혹이 풀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무죄확정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박 전 장관에게 현대 비자금 150억원이 실제로 건네졌는지를 밝히는 실마리도 그가 쥐고 있다. 또 고 정 전 회장이 시인했던 스위스 계좌 3000만 달러 비자금의 행방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검찰이 수사로 이런 사실을 입증하더라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정치인들에 대해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에 따라 처벌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드시 진실은 규명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비리를 밝히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정권과 대기업의 비밀거래가 실제로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시장의 경쟁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정권이 대기업과 거래를 한 게 사실이라면 스스로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직무를 유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방법으로 이익을 도모하는 기업의 관행도 용납돼선 안 된다. 검찰은 비밀거래의 실체와 수법, 기업과 정치인의 비자금 관행 등 진상을 명백히 규명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런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고, 향후 일어날지도 모르는 유사 사건의 수사에 참고자료로 남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