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 75% "현상황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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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벤처기업인 A사는 이달 초 벤처캐피털로부터 "시장 분위기상 계획했던 투자를 당분간 보류한다" 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 3월 설립돼 아직 매출이 없는 상태에서 자금 수혈을 받지 못하자 A사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이 회사 李모 상무는 "일단 서버와 인력을 충원하는 것을 연기했지만 조만간 투자를 받지 못하면 계획했던 사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 이라고 말했다. '닷컴 위기론' 이 퍼지고 있다.

'서비스와 아이디어'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 순수 인터넷 닷컴기업들의 위기가 심각해 일부에서는 "올 여름과 가을이 두렵다" 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 화려하게 코스닥에 등록한 닷컴기업의 주가는 대부분 반토막에도 못미친다.

대표적 황제주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주가는 연중 최고가(34만5백원)의 6분의1인 6만9천원대며, 새롬기술도 최고가(28만2천원)의 9분의1인 3만3천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중앙일보가 최근 주요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CEO) 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닷컴 위기' 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현 상황이 '큰 위기' 라고 대답한 CEO가 31%, '약간 위기' 라고 응답한 최고경영자가 42%에 달하는 등 전체의 73%가 닷컴 위기론에 동의했다.

통신장비.소프트웨어 개발 등 오프라인 사업이 뒷받침된 정보통신 벤처기업보다 아이디어만 갖고 사업에 뛰어든 순수 인터넷 기업의 경우 더욱 심각한 상태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신재정 사무국장은 "일부 회원사의 경우 직원 월급을 제대로 못 준다고 호소할 정도" 라고 전했다.

이 상황이 6개월 정도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 응답자들이 45.9%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응답자의 44.4%는 '닷컴기업의 실적 부진' 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38.9%는 '닷컴기업에 대한 사회적 반감으로 위기가 확대해석된 것' 이라고 답해 CEO들은 사회 일각에 퍼진 '닷컴 불신론' 을 우려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정호 박사는 "일부 머니게임에 열중한 닷컴기업 탓에 벤처가 창출하는 부(富)를 정당한 근로소득이 아닌 투기와 정보를 통한 불로소득으로 인식하면서 반(反)벤처 정서가 생겨 위기가 더욱 확산된 것" 이라고 지적했다. 창투사나 엔젤 등으로부터의 투자 유치도 급속히 냉각됐다.

응답기업 중 39개사가 올해 투자를 받았지만 대부분 1, 2분기에 그쳤고 3분기(7~9월)에 투자를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이에 따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해, 앞으로 닷컴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업체는 기업 인수.합병(M&A)과 해외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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