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의 생애 우화 형식으로 재구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터넷 서점에서 '이솝우화'를 찾으면 300여권은 너끈히 나온다. 우리나라에〈별주부전〉이 있다면 서양에는 〈이솝우화〉가 있는 셈이다. 〈별주부전〉과 마찬가지로 〈이솝우화〉도 내용과 형식이 제가끔 다른 판본을 무수히 갖고 있다. 우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재창조되게 마련이니까.

독일 작가 한스 요아힘 셰틀리히가 쓰고 박공우 님이 그림을 그린 〈자유인 이솝〉(참솔 펴냄) 은 이솝의 생애를 재구성한 소설이다. '그의 우화보다 더 우화 같은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우화 형식을 빌려 이솝이 살아온 영욕의 세월을 그리고 있다. 셰틀리히는 기존 가치관에 굴복하지 않는 이솝을 통해 정치가와 철학자 등 권력층의 자만과 무지를 조롱한다.

황소를 부러워하다 배 터져 죽은 개구리, 따먹지 못한 포도가 '신포도'일 거라며 뒤돌아서는 여우 등 수많은 우화를 지어낸 '지혜의 보고' 이솝은 흰수염에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현자의 모습이 아니다. 이빨은 몽땅 빠졌고 사팔뜨기에다가 양 다리는 심하게 휘었으며 더더욱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노예의 몸이다. 모든 사람이 혐오할 수밖에 없는 추한 외모와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천한 신분의 이솝.

이솝은 사모스 섬의 철학자 크산토스의 노예로 팔려간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솝의 진가가 발휘된다. 크산토스는 수많은 제자를 둔 명망 있는 철학자이지만 이솝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위선자로 전락하고 만다.

어느 날 크산토스는 자기 제자들을 초대하고 이솝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음식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첫번째 나온 음식, 삶은 돼지 혓바닥. 그 다음에 나온 음식도 맵게 양념한 돼지 혓바닥. 화가 난 크산토스에게 이솝은 "혀보다 더 훌륭한 것이 무엇입니까? 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죠. 사람들은 혀를 가지고 학문을 배우고 법을 만들고 삶에 질서를 부여합니다. 그러니 혀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는 셈이지요."라고 말한다.

그 다음날 크산토스는 이솝에게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을 사오라고 말한다. 이번에도 이솝은 돼지 혓바닥을 음식으로 내온다. "사기와 술책, 질투와 음모, 싸움과 적대관계… 이런 게 다 바로 혀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혀보다 더 사악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이 책 69쪽에서)

자유의 몸으로 풀려난 이솝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지혜와 기지로 바빌론 왕국의 관직에까지 오른다. 그러나 부귀영화도 잠깐, 이솝은 여행을 떠난 델포이에서 억울하게 삶을 마감한다. 자신을 자유의 몸으로 풀어도 주고 부귀영화를 누리게도 해준 유일한 무기, 혀를 함부로 놀렸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면서 가장 나쁜 것이 혀라는 사실을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솝의 생애를 소설 형식으로 재현한 책은 이 밖에도〈이솝을 위한 이솝우화 1, 2〉(이솝 지음, 자작나무 펴냄, 1999년)가 있다. 이 책은 스페인 엘 에스코리알 도서관에 보관된 1489년판을 완역한 것으로 이솝우화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솝의 생애 뿐만이 아니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알폰소와 포기오의 이야기 모음집>, <이솝의 기괴한 이야기들> 등 80여편의 우화를 총망라하고 있다.

이솝은 기원전 6세기께 그리스에 살았던 사모스인이라고 하지만 가공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그리스인이든, 가공의 인물이든 우리네 삶의 정곡을 찌르는 그의 우화들이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면 하잘것 없이 살았던 이솝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쉬는 현재인일 수밖에 없다.〈자유인 이솝〉처럼 몇 세기가 지나도 그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이 나올 테니까.

오현아 Books 기자(perun@joins.com)

▶이 글에서 이야기한 책들
* 자유인 이솝(한스 요아힘 셰틀리히 지음, 박공우 그림, 전재민 옮김, 참솔 펴냄)
* 별주부전(엄기원 엮음, 김주자 그림, 교학사 펴냄)
* 이솝을 위한 이솝우화 1,2(이솝 지음, 권미선 옮김, 자작나무 펴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