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승진 싫다는 현대차 대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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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현대자동차 일반직(사무직) 대리 6년차인 A씨(35)는 내년 인사를 앞두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동료들 못지않은 인사고과 점수도 받아놔 과장 승진 대상자 서열의 앞쪽에 있는 그가 왜 고민에 빠졌을까.

 그의 고민은 승진에 목을 매는 대다수 회사원과 정반대로 승진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나온다.

 “승진하면 연봉이야 오르겠지만 언제 잘릴지도 모른다는 고용불안의 늪에 빠지는 겁니다. 상당수 동료도 승진으로 인한 혜택보다 노조의 보호막에서 제외된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고민이 A대리만의 것이 아니라는 건 현대차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움직임에서도 감지된다.

 노조는 지난달 29일 소식지를 통해 ‘거부 의사 명확히 전달 시 강제 승진 발령 없다’라는 제목 아래 “강제 승진 관련 일반직 조합원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조합원이 의사에 반해 강제 승진이 되지 않도록 고충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본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 강제 승진시키지 않는다’는 회사와의 합의사항도 상기시켰다. 현대차의 경우 일반직은 과장 승진과 동시에 노조원 자격을 상실하도록 돼 있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제때 승진할 경우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는 즉시 연봉이 1000만원쯤 올라간다. 다만 고참 대리의 경우 승진하면 그동안의 근속연수가 무효화되고 새로 과장 1호봉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연봉 차이가 별반 없거나 되레 깎이는 등 개인에 따라 사정이 달라진다. 노조원들이 과장 승진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A씨는 “고용불안이 가장 크다. 회사가 자르기로 마음먹으면 근무지를 벽지로 돌리는 등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노조원으로 남아 있으면 울산 1공장에서 2공장으로 단순히 자리를 이동시키는 경우도 노조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 노조 보호막 아래 안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차 노사 단체협약에 ‘조합이 부당한 배치 전환이라고 생각할 경우 회사는 이를 조합과 협의해야 한다’는 등 조합원 인사에 노조가 개입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있다.

 노조원 B씨(50)는 “특히 올해 노사 간 임단협에서 합의한 ‘회사가 필요할 경우 정년(59세)을 1년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이 비노조원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측 관계자도 “과장 승진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일부 있는 게 사실이다. 이들은 고용안정 등에서 노조의 보호막에서 제외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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