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살 때 KB카드 못 쓰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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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카드 수수료 전쟁에 카드사의 ‘큰 고객’인 현대자동차가 뛰어들었다. 지난 10월 카드사와 가맹점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이후 대기업으로는 처음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7개 전업카드사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12월 1일부터 모든 차종에 대해 카드 수수료율을 낮춰 적용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현대자동차는 카드사에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현재 1.75%에서 1.7%로, 체크카드는 1.5%에서 1.0%로 내리라고 요구했다.

 최근 카드사는 중소가맹점의 범위를 연간 매출액 2억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1.8% 이하로 낮추기로 했다. 현대차의 요구는 중소가맹점보다 더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지난달 말 계약이 끝난 KB국민카드는 고심 끝에 이를 거절했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가 제시한 인하 폭이 너무 커서 지금까지도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지난 4일부터 현대차를 구입할 때 KB국민카드는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나머지 카드사 6곳(신한·현대·삼성·롯데·비씨·하나SK카드)은 현대차 요구를 받아들일 계획이다. 카드사로서 현대차는 놓칠 수 없는 고객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구매에 쓴 카드 이용금액은 20조원 정도다. 카드사가 올리는 가맹점 수수료 이익만 약 3000억원에 달한다. 현대차의 국내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40%가 넘는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는 건당 결제금액이 큰 상품인데, 카드사가 원가에 비해 과도한 수수료를 떼어갔다”며 “특히 연체 위험이 없는 체크카드는 큰 폭의 인하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수수료율 인하 압박에 시달리던 카드사의 부담은 가중될 전망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체크카드 수수료율을 단숨에 1%까지 낮춰달라는 것은 수수료 수익의 3분의 1을 내놓으라는 얘기”라며 “당장에 다른 대기업이나 중소가맹점의 추가 인하 요구도 밀려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이재연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할 경우 카드사의 중소가맹점 수수료 인하 여력은 줄어든다”며 “앞으로 가맹점 규모에 따른 수수료율 격차가 더 벌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현대차의 요구를 받아들인 카드사는 고객의 혜택을 점차 줄일 전망이다. 현재 카드사는 체크카드로 자동차를 일시금으로 결제하면 전체 금액의 1.2~1.5%를 캐시백이나 포인트로 적립해 준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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