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와 나 ⑤ 중견수출기업 코텍·와이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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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 코텍 본사에서 28일 직원들이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다. 산업용 모니터를 수출하는 이 회사는 한·EU FTA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산업용 모니터를 생산하는 중견기업 코텍(인천 송도 신도시)은 최근 유럽 시장의 반응으로 들떠 있다. 기존 거래처 두 곳 외에 영국·독일 업체들이 새로 구매 문의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 회사 윤성훈 이사는 “7월에 발효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덕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EU FTA로 코텍의 TV모니터 완제품은 유럽 수출 관세 14%가 6년에 걸쳐 없어진다. 일부 반제품은 이미 관세 5%를 물지 않는다. 윤 이사는 “3000달러짜리 TV모니터 같은 경우 6년 뒤 철폐되는 관세가 총 420달러”라며 “점차 가격 경쟁력이 올라갈 거란 정보에 벌써 구매 상담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FTA에도 적용되는 진리다. 준비한 업체만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텍은 지난해부터 한·EU FTA에 대비했다. 처음엔 ‘원산지 증명서’니 ‘인증수출자 제도’니 하는 용어가 어려워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먼저 손을 내민 건 인천세관이다. “FTA를 준비하고 싶으면 도와주겠다”는 말에 직원을 배치했다. 코텍 오시원 과장은 “세관에서 시키는 대로 서류를 준비하고 프로그램을 설치했더니 ‘인증수출자’ 지정을 받을 수 있었다”며 “전담 직원 없이도 비교적 수월하게 관세 혜택을 봤다”고 말했다.

 인천시 청천동의 절삭공구 업체 와이지원도 비슷하다. 원산지 증명서 발급법을 미리 숙지한 덕에 7월부터 2.7%의 유럽 시장 관세 철폐 혜택을 당장 볼 수 있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 시장에서도 5% 안팎의 관세가 없어진다. “관세 폭이 작아 실감이 나겠느냐”고 묻자 “천만의 말씀”이라고 응수한다. 와이지원 육근호 과장은 “미국 시장에선 중국 제품과 가격 경쟁이 심해 1달러 차이로도 수주가 왔다 갔다 한다”며 “그런 판에 가격 5% 인하는 엄청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중소업체가 FTA를 완벽히 대비하는 건 아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유럽 시장 수출 업체 4333곳 중 지난달까지 특혜 관세를 위해 ‘인증 수출자’ 지정을 받은 업체는 3734곳(86.2%)이다. 14% 정도의 기업은 아직 한·EU FTA 발효로 인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인천 상공회의소 교육통상팀 유영석 대리는 “직원 수가 적은 영세 업체일수록 원산지 증명 업무를 담당할 직원을 두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동시다발적인 FTA 체결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라마다 FTA 협정 내용이 달라 원산지 규정과 통관 절차 등을 따로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무역협정국내대책본부 정희갑 과장은 “나라마다 따로 FTA 대비책을 세우느라 시간·인력 낭비가 생기는 이른바 ‘스파게티볼’ 효과를 우려하는 기업이 많다”며 “규모가 작은 업체일수록 정부가 합동으로 마련한 ‘FTA 활용지원책’을 적극 활용하길 권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무역협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이 합동으로 마련한 지원 대책은 통관 서비스를 넘어 FTA 관련 경영 전략을 짜는 컨설팅도 제공한다. 한국무역협회 성용화 FTA활용지원단장은 “FTA로 철폐된 관세 혜택분을 가격에 반영할지 마케팅에 반영할지 고민하는 중소기업이 많다”며 “여러 기관들이 관세사 등 전문가를 배치해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임미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스파게티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여러 나라와 동시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나라마다 다른 원산지 규정과 통관 절차, 표준 등을 확인하느라 시간·인력이 투입돼 FTA로 인한 효과가 애초 기대보다 떨어지는 현상이다. 국가별로 다른 규정이 얽히고설킨 스파게티 가닥과 닮았다는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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