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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타격왕 징크스

중앙일보

입력

올시즌 장성호,박종호, 송지만의 타격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이 3명이 속한 팀 중에서 우승권에 가까운 팀은 박종호가 뛰고 있는 현대뿐이다. 그런데 타격왕과 한국시리즈 우승에의 상관관계를 따져본다면 '타격왕 징크스'가 상당한 흥미거리를 제공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격왕 징크스' 이것은 역대 단 한 번도 타격왕을 배출한 팀은 한국시리즈 패권을 잡지 못한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런 징크스의 처음 시작은 원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감독 겸 선수였던 백인천씨가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은 0.412의 기록으로 수위타자를 차지 했지만 팀은 3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또한 88년 김상훈이 다시 한번 명맥을 이었지만 결과는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최고의 스타군단 삼성은 당대 최고의 타자인 장효조가 4번, 이만수 1번, 양준혁 3번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타격왕을 8번을 했지만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장효조가 타격왕을 차지했던 85년에는 한국시리즈가 없었다. 가장 우승에 근접했던 84년 역시 7차전에서 유두열의 한 방에 무너졌고, 93년 4차전까지의 우세를 결국 지키지 못하고 해태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것은 어쩌면 삼성은 2가지 악재를 모두 가진 상황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픈 것으로 다가온다. 단기전의 역적(?) 김시진과 타격왕 징크스가 결국 삼성을 무관의 제왕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팀에서 깨어줄까 했지만 89년 당시 기록관리의 황제라 불리운 김영덕 감독은 고원부를 타격왕에 등극을 시켰지만 해태에게 1승 4패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또한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닉네임답게 실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해서 91,92년에 다시 한번 이정훈이 타격왕 2연패를 했지만 해태에게 4연패와 롯데에게 1승4패로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가을의 전설로 불리운 해태타이거즈 역시 타격왕 징크스는 악몽과 같은 것이었다. 해태는 최초의 타격왕이 90년도에 배출이 되었다. 당시 해결사로 통하였던 한대화는 4번타자를 맡으면서 타격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삼성에게 플레이오프에서 3연패를 당하면서 덜미를 잡히면서 한국시리즈 5연패의 꿈이 사라졌고,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94년도 역대 타격성적 2위의 빼어난 기량을 선보였지만 역시 한화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무너져 역시 2연패의 꿈을 접고 말았다.

쌍방울은 95년 김광림이 타격왕을 차지했지만 팀은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97년에는 김기태가 타격왕의 왕관을 썼지만 역시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롯데는 99년도 마해영이 이종범 이후 우타자로서는 5년만이고 팀으로서는 최초의 타격왕을 배출하였지만, 역시 역부족으로 물러났다.

이처럼 타격왕을 차지한 선수가 속한 팀이 우승을 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대부분 타격왕을 차지하면서 팀의 득점과 타점을 주도했던 선수들이다. 하지만 막상 단기전에 들어가서는 팀이 갖는 기대치 이하의 성적을 낸다는 점이다. 성취감의 저하가 큰 몫을 차지했던 것으로 본다.

물론 기록 관리로 통칭되는 타격왕은 어느 분야보다 관리가 치열하다. 다른 분야는 많이 나와야 유리하지만 타격은 그렇지 않다는데 있기 때문에 막판 컨디션 조절의 실패에도 원인이 있다. 또한 우승에 대한 부담감이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만큼 절대적인 것이다.

올시즌 타격왕에 혼전에 들어서면서 20세기 마지막 악령인 타격왕 징크스를 한 번쯤 돌이켜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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