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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LIFE] 미국 변호사 박영선씨에게 듣는 상속 노하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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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고, 또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그래서 남은 재산의 처리 방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놓아야 할 문제다. 1999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유산상속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영선(41)씨는 “좋은 상속이란 분쟁을 막는 상속”이라고 정의했다. 박 변호사는 “완벽해 보이는 가정도 유산분쟁에 곧잘 휘말린다”면서 “남은 가족이 화목하게 살 수 있도록 현명한 상속계획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상속 관련 지침서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위즈덤하우스) 출간에 맞춰 한국에 온 박 변호사를 만나 뒤탈 없는 유산상속 노하우를 들어봤다.

서류만큼은 공평하게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불공평한 상속은 분쟁의 씨앗이다. 덜 받은 자녀가 서운해하는 이유를 탐욕스러운 성품 때문이라 몰아세울 수는 없다. 유산의 크기가 부모의 관심이나 애정의 척도로 여겨져서 섭섭하고 화가 나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미국 교민 최모씨의 사례를 들었다. 최씨는 ‘백수’인 작은아들에게 재산 대부분을 물려주겠다는 상속계획을 세웠다. 의사인 큰아들이야 돈도 있고 명예도 있으니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동생에게 기꺼이 양보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큰아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자기는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밤잠도 자지 않고 노력했는데, 집에서 놀고 있는 동생에게 유산을 더 준다면 이제 자신도 더 이상 땀 흘려 일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다. 최씨는 상속계획을 새로 짜야 할 처지가 됐다.

 부모 마음이야 상속 비율을 조정해 자녀 간의 생활수준 차이를 줄여주고 싶겠지만, 그 속내를 상속 서류에까지 남겨서는 안 된다. 대신 꼭 더 도와줘야 할 자녀가 있으면, 생전에 다른 자녀 모르게 보조해주는 게 현명하다. 주택 구입비나 사업 자금 등을 ‘몰래’ 보태주란 얘기다.

끝까지, 조금씩 증여하라

재산으로 자녀를 좌지우지하려는 것도 옳지 않지만, 완전히 줘버려 영향력을 잃게 되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둘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

 생전에 재산을 모두 자녀에게 증여해 줬다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외로워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재산을 주고 난 뒤에는 경제적·심리적으로 자식에게 매여 살게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재산 증여 후에 자녀의 방문 횟수는 현저히 준다. 노년의 소외감은 커지고, ‘괜히 미리 줬다’는 후회가 뒤따른다. 부모가 끝까지 경제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순간 적재적소에 도움을 주는 게 ‘선진국형 증여’다.

 심리상태가 불안한 때 재산 증여를 결정해선 안 된다. 배우자와 사별한 뒤 혼자 남게 됐을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다. 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주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잘 돌봐줄 것으로 믿고 증여해 주는 경우가 많지만, 기대에 어긋나기가 쉽다.

무형의 재산도 유산이다

재산을 물려줄 때는 돈만 가선 안 된다. 부모의 가치관과 연륜이 함께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무형의 유산에 대한 상속도 준비가 필요하다. 추억의 유산, 관계의 유산, 리더십의 유산, 노하우의 유산, 자선의 유산 등에 대한 상속이다. 이를 위해서는 젊어서부터 유언장을 작성해 자신이 가진 유산을 정리해보는 게 바람직하다. ▶나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내가 평생 지켜온 가치관 중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싶은 유산은 무엇인가 ▶가족과 함께했던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 등의 항목을 정해두고 답을 적어보는 것이다. 또 ‘냉면 국물 내는 법’ ‘갈비찜 만드는 법’ 등 자신만의 특기를 자세히 적어 남기는 것도 훌륭한 유산 상속법이다.

이지영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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