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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조선의 프로메테우스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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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인간을 동정한 대가로 나는 이런 동정 없는 징벌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인간에게 불을 선사했소. 그로 인해 그들은 많은 기술에 통달하게 될 겁니다. 나는 또 문자를 고안해 그들에게 주어 예술과 학문의 어머니인 기억이 되게 했지요.” 고대 그리스 비극 『결박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Desmetes)』(BC 460년대)에서 최고신(神) 제우스에 의해 제목처럼 외딴 암벽에 쇠사슬로 묶인 프로메테우스가 한 말이다. 그는 요즘 인기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로 관심을 받는 세종대왕을 연상시킨다. 세종은 ‘어린 백성’이 배우기 쉽고 표현 영역이 광대한 문자 한글을 창제했지만 관료와 유생의 반대로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독수리에게 간을 쪼인 것 같은 심적 고통을 겪었다.

그러면 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준 것에 분노했고, 왜 최만리(崔萬理) 등 조선의 문신들은 세종의 한글 창제에 반대했을까? 먼저 프로메테우스의 경우를 보자.

그림1 프로메테우스(1907), 장 델빌(1867~1953) 작, 캔버스에 유채, 500X250㎝, 브
뤼셀 자유 대학교, 브뤼셀.

 아이스킬로스(Aeschylos·BC 525?~BC 456?)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 따르면 제우스는 티탄(타이탄) 신족인 아버지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새로 권좌에 오르면서 인간 종족도 쓸어버리고 새로운 종족을 만들려고 했다. 티탄 신족이지만 제우스 편에 가담했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멸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우스에게 강하게 반대했다. 제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주기를 거부하자 프로메테우스는 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19세기 말 상징주의(Symbolism) 화가인 벨기에의 장 델빌은 그 장면을 웅장하게 묘사했다(그림 ①). 거신(巨神) 프로메테우스가 쳐든 불의 광채에 먹구름이 흩어지고 수많은 조그만 인간들이 그림 아래쪽 먹구름 속에서 솟아나온다. 불의 사용으로 인간이 무지몽매에서 깨어나 기술과 문명의 시대로 도약하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벼르고 있던 제우스는 마침내 프로메테우스를 붙잡아 대장장이신(神)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그를 황량한 절벽에 쇠사슬로 묶어놓았다. 연극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이 장면에서 시작하며,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 디르크 판 바부렌의 작품(그림 ②)도 이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대장장이신은 프로메테우스를 결박하면서도 측은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다. 제우스의 신조(神鳥) 독수리(그림 왼쪽 위)와 제우스의 전령신 헤르메스(그림 오른쪽)가 그를 감시하며 재촉한다.

 연극에서 프로메테우스는 그를 위로하러 온 바다의 님프들(합창단이 이 역할을 맡는다)에게 자신의 괴로움과 두려움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그는 제우스에 대한 자세를 굽히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제우스의 운명에 관한 중대한 비밀을 알고 있지만 결코 말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 비밀은 제우스가 테티스 여신과 결합한다면 거기서 태어나는 아들에게 권좌를 빼앗기리라는 것.)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보내 비밀을 말하지 않으면 매일 독수리가 와서 그의 간을 쪼아먹을 것이며 그의 간은 계속 다시 자랄 것이므로 순간의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우리라고 위협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말하기를 거부하고 제우스의 진노로 천둥·번개가 치는 가운데 연극은 끝난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현대에 이르기까지 프로메테우스는 선각자(그의 이름은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이자 압제에 저항하는 투사의 대표로 여겨진다.

그림2 헤파이스토스에게 쇠사슬로 묶이는 프로메테우스(1623), 디르크 판 바부렌(1595~1624) 작, 캔버스에 유채, 202X184㎝, 국립박물관, 암스테르담.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고대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가 참주(僭主·tyrannos)의 독재인 참주정치에서 민주정치로 이행하던 시기에 쓰였다. 그래서 참주는 제우스, 민주정치 지도자는 프로메테우스, 폴리스 일반 시민은 인간에 대입할 수 있다. 제우스가 지식과 기술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불의 분배를 거부한 것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어 저항을 예방하고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세종의 경우는 프로메테우스와 조금 다르다. 그 자신이 최고 권력자였고, 한글 창제와 보급으로 관료를 통하지 않고 백성의 여론과 직접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결과적으로 신권을 제한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민중의 지지를 받는 독재자’의 지위를 굳건히 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한글 창제가 애민(愛民)에서 나왔으며 인간의 삶에 혁명적인 변화와 혜택을 가져왔다는 점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의 전달과 일치한다. 또 대표적인 한글 반대자 최만리가 일반 백성의 권리와 언로 확대를 반대 이유로 들진 않았지만, 사대부 계층이 한글을 오랫동안 거부한 데는 그에 대한 두려움과 한문을 독점한 엘리트로서의 특권을 유지하고픈 마음이 깔려 있었으리라. 연산군이 ‘언문 금지령’을 내린 것도 자신을 비판하는 일반 백성의 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편, 기술과 지식 대중화에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이 받은 불의 결정적인 혜택은 조명과 난방보다도 금속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자 인간은 금속으로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들어 전쟁과 살육이 난무하는 ‘철의 시대’를 가져왔다고 한다. 또 오늘날 한글의 발명을 잇는 지식 대중화 혁명인 인터넷과 SNS를 보면 악성 루머와 각종 괴담과 허위 정보가 수적 우세를 통해 진실을 뒤덮는 현상, 말하자면 나무꾼 셋이서 공자가 맹자 스승이냐, 맹자가 공자 스승이냐를 놓고 싸우다 두 명이 맹자가 공자 스승이라고 우기자 그렇게 결론 났다는 이야기 같은 현상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인터넷 지식 민주주의가 인터넷 지식 중우정치(衆愚政治)로 변질되어간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이스킬로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가 나온 즈음, 아테네는 민주정치가 꽃을 피우면서 황금시대를 맞았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씨가 모든 시민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아테네는 점차 몰락했는데 철학자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중우정치의 병폐는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 소수 의견 억압, 특히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악으로 간주하며 선동을 통해 수적 우세를 확보해 탄압하는 것이라고 플라톤은 말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는 속담처럼 지식 대중화의 흐름을 부정하거나 원천적으로 규제할 순 없다. 인터넷 지식의 중우(衆愚)화를 막는 것은 규제를 늘리는 것보다 잘못된 정보나 의견이 수적 우세를 지닌다고 판단하면 ‘침묵하는 다수’로 머무르지 말고 정보와 의견 제시로 맞서는 것이며, 또한 자기 자신도 중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다른 의견을 악으로 매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잊을 때 프로메테우스의 불씨는 반대로 화마가 되어 우리를 덮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소영 기자

연극 조연 처음 등장시킨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킬로스는


아이스킬로스(사진)는 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으로 불리는데, 세 명 중 가장 윗세대다. 그는 그리스 학자들에게 ‘비극의 아버지’라고 불리곤 했다. 종래의 고대 그리스 연극은 1명의 주연배우와 합창단이 등장할 뿐이었는데, 아이스킬로스가 처음으로 조연배우를 등장시키고 합창단의 역할을 줄여서 훨씬 긴장감 있는 대화와 역동적인 사건 전개가 이루어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 아이스킬로스는 당시의 기술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웅장한 무대장치와 특수효과를 동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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