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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에 총 쏴라” 아버지 카다피와 달랐던 사이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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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39)이 수개월의 도피 끝에 19일 새벽(현지시간) 리비아 남부 사막지역에서 체포됐다. 지난달 카다피 사망 이후 카다피 잔존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그가 붙잡히면서 카다피 체제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사이프를 제외한 카다피의 6남1녀 중 4남 무타심 등 아들 3명은 내전 중에 숨졌으며, 나머지 세 아들과 딸은 알제리와 니제르에 피신해 있다.

 리비아 과도정부의 압델 라힘 알키브 임시 총리는 이날 진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이프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알키브 총리는 “사이프는 공정한 재판을 받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사이프의 체포 소식에 리비아 전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사이프는 19일 새벽 리비아 남부 사막지대이자 니제르·알제리와의 접경지역인 오바리에서 매복 중이던 시민군에게 체포됐다. 진탄 지역 시민군 사령관인 알아즈미 알아티리는 “사이프가 니제르로 도망가려 한다는 제보를 받은 뒤 예상 도주로에 병력 15명을 배치했다”며 “그곳을 지나던 차량 2대를 경고 사격으로 멈춰 세웠더니 사이프가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이프가 타고 있던 두 번째 차는 도주하려 했으나 바퀴가 모래에 파묻히는 바람에 실패했다. 측근과 함께 차에서 나온 사이프는 얼굴에 흙먼지를 묻히며 정체를 숨기려 했다. 그는 자신을 “낙타를 키우는 압둘 살렘(중동의 흔한 이름)”이라고 말했지만 시민군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 체포된 사이프는 “총으로 머리를 쏴 달라”고 외쳤다고 알아티리 사령관은 전했다. 지난달 시민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사살된 부친 카다피가 "쏘지마, 쏘지마”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체포 당시 그는 이슬람 유목민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수염을 기른 채 테 없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오른손 손가락 3개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로이터는 이 상처가 나토군의 공습에 의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의 차량에서는 수천 달러의 현금과 자동소총, 수류탄 등이 발견됐다. 민간인 학살 등 혐의로 사이프에 대해 지난 6월 체포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루이스 모레노오캄포 수석검사를 리비아로 보내 리비아 과도정부와 사이프의 재판 방식을 논의할 방침이다.

정현목 기자

◆사이프 알이슬람=카다피의 차남으로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서방의 경제제재를 푸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등 카다피 정권의 브레인 역할을 했다. 여러 인질 협상에서 중재 역할을 수행 했다. 온건 개혁주의자로 알려졌지만 이번 내전 과정에서 아버지의 민간인 학살을 도와 국내외 비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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