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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선 죽기살기 덤비는 까닭 … 송환 땐 밥줄 끊기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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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팅촨(停船·정선, 멈춰라). 팅촨. 팅촨.”

 19일 오전 4시25분쯤 제주도 추자도 북서쪽 12㎞ 해상. 제주해경 1505함(1500t)에서 출동한 고속단정이 경고 방송을 하자 우리 측 영해를 침범해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이 도주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해경의 단속반원들이 중국 어선을 제압했다. 이 과정에서 해경 5명이 다쳤다. 하지만 이 배를 제주항으로 압송하려 하자 현장에 있던 중국어선 25척이 선단을 꾸려 경비함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수적 우위를 믿고 나선 ‘인해전술’인 셈이다. 제주해경 관계자는 “우리 영해인 제주 해역에서 어선 나포를 이유로 다른 배들이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은 처음”이라며 “배를 풀어 달라는 일종의 ‘무력시위’였다”고 말했다. 이들은 제주 서귀포해경과 전라남도 목포·여수·완도해경 경비함정 12척과 헬기 2대가 긴급하게 현장에 출동하고 나서야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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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뿐 아니다. 지난 16일 전북 군산시 어청도 서쪽 160㎞ 해상에선 불법 조업이 적발된 중국어선 11척이 서로 밧줄을 묶어 저항하면서 달아났다. 한국 측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불법 조업하다 적발된 중국어선들의 대응이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선단을 꾸려 집단으로 저항하거나, 모선을 중심으로 재빨리 왼쪽·오른쪽으로 붙은 뒤 밧줄로 묶는 ‘연환계’가 대표적이다. 10여 척의 어선에 탄 선원들이 집단적으로 죽봉·도끼·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며 저항을 하기 때문에 경비함 1척만으론 제압하기 어렵다. 게다가 어선이 쳐 놓은 그물에 물고기가 있다는 사진을 찍어야만 불법 조업으로 처벌할 수 있다. 지난 16일 서해상에서 최근 중국어선 11척이 밧줄로 묶어 집단 저항했을 때는 해경 경비함 2척과 헬기 2대, 특공대원 24명을 투입해 이들을 제압했다.

 중국 어선들이 이처럼 격렬하게 저항하는 데는 나포되면 수천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어야 하고 중국으로 송환됐을 때의 처벌 때문이다. 해경은 무허가 조업의 경우 50t급 이하는 2000만∼3000만원, 50∼80t급은 4000만원 이상의 담보금을 물린다. 조업기간 위반이나 조업일지 미기록 등은 200만∼500만원을 물리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 어선들에 한국 측 EEZ는 매력적인 곳이다. 남획과 오염으로 조업이 어려운 중국 해안과 달리 한국 측 EEZ 내에서는 고기가 넘쳐난다. 최근 서해에는 조기·멸치·고등어 등의 어장이 형성됐다. 중국 어선 1척이 보름간 불법 조업을 하면 2000만∼3000만원을 벌 수 있다. 선원들도 한 번 조업을 하면 중국에선 적지 않은 돈인 30만~45만원을 벌 수 있어 불법 조업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 목포해경에서 중국어 통역을 맡아 수사에 참여하고 있는 이종석 순경은 “무허가 조업으로 단속돼 중국으로 돌아가면 배를 압수당하거나 어업면허를 취소당한다”면서도 “불법조업으로 벌 수 있는 수입이 짭짤해 중국 어민들이 이를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목포=유지호 기자

◆연환계(連環計)=연환은 고리를 연결한다는 뜻이다. 『삼국지』엔 적벽대전을 앞둔 조조의 군대가 유비의 책사인 방통의 계략으로 모든 배를 쇠사슬로 연결했다. 하지만 주유와 제갈량이 화공을 써 조조 군의 선박을 모두 불태우면서 대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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