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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장수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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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두보(杜甫)는 시 ‘곡강(曲江)’에서 “가는 곳마다 외상 술값은 늘 있는데/인생은 예부터 칠십 살기 드무네(酒債尋常行處有/人生七十古來稀)”라고 노래했다. 이 시의 고래희(古來稀)에서 칠십 세를 뜻하는 고희(古稀)라는 말이 나왔다. 두보는 쉰여덟에 하세(下世)했다. 한자(漢字)를 파자(破字)해 장수의 의미로 쓰기도 한다. 희수(喜壽)의 희(喜)자는 초서(草書)로 쓰면 칠(七)자가 둘이기 때문에 일흔일곱, 미(米)자는 파자(破字)로 팔(八)자가 둘이니 미수(米壽)는 여든여덟, 일백(百)에서 일(一)을 뺀 백수(白壽)는 아흔아홉 세를 뜻하는 것이 이런 경우다.

 장수를 비는 마음이 들어간 용어도 많다. 일흔한 살은 팔십을 바란다는 망팔(望八)이고, 여든한 살은 망구(望九), 아흔한 살은 백 세를 바라보는 망백(望百)이다. 여든부터 백 세까지를 모기(?期)라고 하는데 모(?)는 여든에서 아흔, 기(期)는 백 세를 뜻한다. 춘당(椿堂)·춘정(椿庭)·춘부장(椿府丈) 등 남의 부친에게 춘(椿)자를 쓰는 이유도 장수를 비는 의미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의 “대춘(大椿)이란 나무는 8000년을 봄으로 삼고, 8000년을 가을로 삼는다”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장수인을 ‘사람이 상서롭다’는 뜻에서 인서(人瑞)라고 한다. 정조(正祖)는 ‘인서록(人瑞錄)’에서 “장수는 상서로움이 사람에게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장수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산스러운 인생이 적지 않다. 즉위 후 선왕 경종독살설에 시달리다가 지지 당파가 다른 아들을 뒤주에 넣어 죽였던 영조(英祖)는 여든두 살까지 살았고, 천민 출신 시인 유희경(劉希慶)은 아흔한 살까지 살았다. 비 오는 방안에서 우산 하나 받치고 살았다는 청백리 유관(柳寬:1346~1433) 정승도 여든일곱까지 살았다. 진시황은 서복(徐福)을 보내 불로초를 구해 오게 했고,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은 서왕모(西王母)의 반도(蟠桃:3000년마다 열리는 복숭아)를 훔쳐 먹고 장수했다는 이야기가 『한무고사(漢武故事)』에 전하는 것처럼 장수는 인간의 오랜 염원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나이는 73세로 고희를 넘어섰고, 21세기 중반이 오기 전 120세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도 전망한다. 한 세기 전에 비하면 인생을 두 번 사는 셈이다. 반면 직장 등에서 퇴출되는 시기는 더 빨라졌다. 두 번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개인이나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