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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독립시킨 노부부, 꼭 대형 아파트 살아야 하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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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대비 자산관리 강의에서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구조의 문제점을 소개할 때마다 단골로 드는 사례가 있다. 도쿄 수도권에 살고 있는 일본인 친구의 92㎡형(28평형) 아파트다. 이를 통해 과거 30여 년 동안에 이 아파트의 가격 흐름과 그 원인, 고령화 사회 진전에 따른 일본인의 집에 대한 인식 변화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보다 20~30년 먼저 고령화가 진행되어온 점을 감안하면 현재 우리나라 가정의 노후대비 자산관리 방향을 정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일본인 친구는 이 아파트를 1984년에 1200만 엔에 샀는데, 이것이 일본의 집값이 피크를 보였던 90년에는 3600만 엔까지 올랐다고 한다. 6년 만에 3배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바로 이 시기가 일본의 베이비부머(1947~50년생)가 왕성하게 내 집 마련을 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일본 집값이 피크를 기록했던 90년은 일본의 경기 거품이 정점을 보였던 때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40세 연령인구의 숫자가 가장 많았을 때였다. 선진국의 경험에서 보면 40세 연령인구가 가장 많을 때 그 나라의 집값이 피크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엄청나게 올랐던 이 친구의 집값은 최근 400만 엔 수준까지 떨어졌다. 도쿄 중심가에서 지하철로 50분~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우리 돈으로 6000만원도 안 되는 시세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원리는 간단하다. 공급은 늘고 수요는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끝나면서 주택공급이 크게 느는 시기가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1970년대, 일본의 경우에는 80년대 후반이 이 시기였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는 최근 몇 년 전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공급이 늘어난 집들을 누가 사주느냐다. 1947~50년 사이에 4.4명 수준이었던 일본의 출산율은 90년대 중반 이후 1.3명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들 세대가 결혼할 때는 세 쌍 중에서 두 쌍이 양쪽 부모로부터 집을 한 채씩 물려받는다는 계산이 된다. 더구나 일본의 주택보급률은 2008년 기준으로 113%다. 가구당 1채를 뺀 나머지 13%에 해당하는 757만 채가 비어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내 집 마련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고 한다.

강의 중에 이런 사례를 소개하면, ‘그건 일본의 이야기이지 우리는 다르지 않으냐’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현재는 다르지만, 변화의 속도는 우리나라가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출산율 추이를 보면, 1950~55년 5.05명, 1955~60년 6.33명, 1960~65년 5.63명이었다. 60년대에서 70년 초반 사이에 출생한 베이비부머가 대량으로 집을 사기 시작하고, 핵가족화와 투기까지 가세되어 집값이 급등했다. 그런데 2005년의 출생률은 1.08명, 2010년에는 출산장려 정책의 효과도 없이 1.22명이었다. 20~30년 후 이들이 결혼할 쯤이면 외동아들과 외동딸이 결혼한다는 계산이 된다. 신랑도 신부도 양가 부모로부터 집 한 채씩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2009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전국 평균 실주택보급률은 101%였다. 서울의 경우는 93%로 낮은 수준이지만 여기에는 원룸과 오피스텔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을 포함시키면 100%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 주택수요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임을 나타내주는 통계인 것이다.

형편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50~60대 세대들의 자산 보유는 대부분 부동산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1955~63년생) 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평균 총자산 5억4000만원, 평균 부채액 6000만원을 보유했다. 즉 순자산액은 4억80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정도 재산이면 그럭저럭 노후생활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4억8000만원 중 4억6000만원이 현재 살고 있는 집값이라는 것이다. 금융자산은 2000만원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은 집을 팔아서 생활비에 충당하는 방법밖에 없을 텐데 700만 베이비부머 세대가 집을 팔려고 내놓기 시작하면 그때의 집값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인 친구는 저출산·고령화·핵가족화가 일본인의 주거형태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2010년 말 현재 일본 전체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65세 이상의 고령자 비율은 23%에 이른다. 그중에서 75세 이상의 후기고령자 비율은 절반 가까운 11%에 이른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16%에 해당하는 465만 명이 독거노인이다. 2009년 여름에는 일본의 한 유명한 탤런트가 사망한 뒤 사흘이 지나서야 발견되면서 이른바 ‘고독사’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과거 3년 동안에 고독사한 사람이 25명이나 되었는데, 이들이 사망하고 나서 발견될 때까지 평균 21.3일이나 걸렸다는 보도도 있었다.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가게들이 사라져가는 현상 또한 노인들에게는 많은 불편을 주고 있다. 두부 한 모 사기 위해 2㎞나 걸어가야 할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구매난민’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일본의 고령 세대는 노부부만 살거나 부부가 사별하고 혼자된 경우에는 18~20평의 소형 평수이면서 쇼핑·의료·취미·오락·친교를 모두 가까운 거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주거형태를 찾는다. 특히 병원 가까운 곳을 선호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11%이고 그중에서 75세 이상의 후기고령자 비율은 4%밖에 안 된다. 따라서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아직은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년쯤 지나면 우리나라도 지금의 일본과 같은 초고령사회가 될 것임을 염두에 두고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 2010년 인구총조사 잠정결과에 따르면, 1~2인 가구수는 지난 5년 만에 23%나 늘어나서 824만 가구에 달했다. 전체 가구수의 48%를 차지한다. 지난해 이후 중소형 아파트의 전세가격은 치솟은 반면 대형아파트의 전세가격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인 것도 이런 현상에서 기인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도 자녀들을 모두 독립시킨 노부부가 대형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1년에 몇 번 와서 머물다 갈지도 모르는 자녀들 때문에 그렇게 꼭 넓은 집을 보유해야 할까. 일본의 경우에는 고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노인들이 서로를 돌보는 복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넓은 고층 아파트에서 이웃과 격리돼 사는 게 문제는 없는 것인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될 사항들이다.

강창희 미래에셋그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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