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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병수의 희망이야기

밥 딜런과 스티브 잡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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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손병수
논설위원

‘펜으로 예언을 말하는 작가와 논객들이여/ 눈을 크게 뜨시오/ 기회는 다시 오지 않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아직 돌고 있으니/ 섣불리 논하지 마시오/…/ 지금의 패자가 훗날 승자가 되리/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니.’

 밥 딜런의 명곡 ‘더 타임스 데이 아 어체인징(The times they are a-changing)’의 2절입니다. 지난달 타계한 애플사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가장 좋아한 곡이지요.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4년에 발표된 이 곡은 반전(反戰)가요지만 노랫말과 멜로디가 좋아 지금껏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5절로 구성된 이 곡에서 잡스는 특히 글머리에 인용한 2절을 사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끝부분 ‘지금의 패자가 훗날 승자가 되리…’를 가장 좋아했답니다.

 사후에 발간된 잡스의 전기에서 백미(白眉)는 단연 재기(再起) 스토리가 아닌가 합니다. 알다시피 그는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쫓겨났습니다. 절치부심, 다시 시작한 사업에서 대성공을 거둔 그는 자신을 쫓아낸 무리를 축출하고 애플에 복귀했습니다. 그가 성공가도만 질주했다면 오늘의 애플은 없었을 것입니다. 잡스는 저 유명한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연설에서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이야말로 내게는 약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라는 무거움이 다시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없는 초보자라는 가벼움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잡스의 그런 재기 스토리에 등장하는 노래가 바로 이 곡입니다.

 84년 애플의 야심작 매킨토시를 출시하는 자리에서 잡스는 이 곡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2절 가사를 직접 읽는 것으로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까마득한 거인이었던 IBM을 곧 따라잡을 것이라는 호언과 함께. 그런 호언과 달리 매킨토시의 부진을 빌미로 출시 1년 만에 애플에서 쫓겨났을 때도 이 노래가 같이했습니다. 전기에 따르면 잡스는 당시 집에 틀어박혀 몇 시간이고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12년에 걸친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애플에 복귀했을 때도 그는 ‘지금의 패자가 훗날 승자가 되리’를 읊조렸다고 합니다. 인간 별종처럼 느껴지는 잡스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까요.

 잡스에게 밥 딜런은 평생의 우상이었습니다. 딜런의 노래만 좋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남긴 글에서 밥 딜런이 “저항가요나 계속 불러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전자음악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간 점이 위대하다”고 말했습니다. “진화, 바로 그것이 언제나 내가 노력하며 시도한 것”이라고 강조했지요. 애플에서 퇴출된 그는 이빨만 빠드득 갈고 있지 않았습니다. 넥스트 컴퓨터에 이어 ‘토이 스토리’를 만든 픽사 애니메이션으로 진화를 거듭한 끝에 재기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잠시 좌절하거나 실패하셨나요? 중요한 싸움에서 져버리셨나요? 스티브 잡스를 한번 읽어보시지요. 밥 딜런의 노래를 곁들이면 더욱 좋겠네요. “…지금의 패자가 훗날 승자가 되리/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니.”

손병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