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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오라클, 제2의 MS 탄생인가

중앙일보

입력

쓰레기 스캔들로부터 표준 로비에 이르기까지 오라클은 현재 사면초가 상태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더 큰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라클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이하 MS)를 상대로 쓰레기 처분 캠페인(?)을 벌여 전말을 폭로하려 했지만 홍보 작전이 완전 실패로 끝나면서 곤란을 겪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데이터베이스 분야의 이 선두 기업은 숙적 MS에 대한 승리를 자축했다.

오라클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의 적극 참여로 MS의 데이터베이스 벤치마크 관련 주장 중 하나를 뒤엎을 수 있었다. 지난 2월 윈도우 2000 출시 당시, 빌 게이츠 회장은 MS가 윈도우 2000, SQL 서버 2000을 12개의 컴팩 프로라이언트(Proliant) 서버에 작동시켜 세계적인 기록의 트랙잭션(transaction: 데이터 파일에 관련된 처리 작업을 통칭, 컴퓨터가 처리하는 단위 작업) 프로세싱 결과를 얻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6월 29일 TPC(Transaction Processing Council)는 기술적인 데이터 투명성(data-transparency)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를 들어 MS-컴팩의 결과를 표결에 부쳐 무효화시켰다. TPC는 주로 시스템 벤더들로 구성된 비영리 컨소시엄으로, 트랜잭션 프로세싱 및 데이터베이스 벤치마크 관련 결과를 평가해 발표한다. TPC의 결정은 벤치마크의 최고 왕좌에 올랐다고 생각했던 MS의 주장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그러나 TPC 표준 기구 프로세스에 정통하다고 자처하는 일부 소식통들은 오라클과 썬이 컴팩-MS 결과를 반전시키기 위한 빈틈을 찾으려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주장했다.

오라클 관계자들은 이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으며 썬 역시 전화 응답을 해오지 않았다.

TPC 회장 제롤드 버거트는 MS-컴팩 TPC-C 벤치마크 결과가 지난 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총회 투표결과 무효화됐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버거트는 "TPC의 모든 심의사항은 비밀에 부쳐진다"고 강조하면서 이번 투표 처리 과정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하지만 MS가 말을 아낄 리 만무하다. MS 윈도우 DNA 플랫폼의 그룹 매니저인 배리 고페는 "자칭 「믿을만한 e-비즈니스 상담자」라고 주장하는 회사가 이런 허튼 소리를 할 줄 몰랐다"고 하며 "그들의 쓰레기 처분 작업은 더더구나 신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은 고페의 독설은 오라클 CEO 래리 엘리슨이 MS가 서드파티 무역협회 및 씽크탱크들에게 자금 지원을 한다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사설 탐정회사를 고용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던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오라클에 따르면 MS는 법무부와의 반독점 소송에 대한 지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독립 기구임을 주장하는 이들 단체에게 돈을 뿌렸다고 한다.

시기심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MS에 대한 비판에 가장 목소리를 높여온 업계 최고의 ''MS 저격수'' 엘리슨은 수년 간 ''MS는 구식 소프트웨어를 팔러 다니는 불량배''라고 비난해 왔다. 하지만 이제 자업자득이란 말이 오라클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실제로 경쟁업체들은 오라클 주장의 본질과 스타일에 대해 반감을 표하고 있다.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벤더인 SAP AG는 최근 평소와 달리 공격적인 비난 논평을 냈다. 이제 세계에서 가장 큰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는 오라클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서다. 공교롭게도 MS 홍보업체인 와그너 에드스트롬사(Waggener Edstrom)는 SAP도 홍보한다.

데이터베이스, 툴, 미들웨어 시장에서 오라클과 접전을 벌이고 있는 IBM 또한 오라클의 세계 시장 장악에 대한 주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IBM 간부들도 요즘 심심찮게 오라클을 비난하고 있다. IBM이 공공연히 경쟁업체들을 직접 비난하는 일은 드문 일이다. 요즘 IBM 소프트웨어 그룹의 최고경영자들은 엘리슨과 그의 회사인 오라클과 거리를 두려 애쓰고 있다.

올초 IBM은 오라클이 자사 고객들을 유인하기 위해 전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때부터 양 사의 관계는 점점 틀어지기 시작했다.

사적인 문제일 뿐, 비즈니스와 상관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엘리슨이 결국 본심을 드러내고 말았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래리 엘리슨이 빌 게이츠를 주시하는 반면 빌 게이츠는 시장을 주시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오라클이 데이터베이스 시장에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MS는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세계를 변화시키거나 말거나 MS 역시 자사가 TPC 고지의 왕좌를 스스로 재정립하기 전에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TPC-C 벤치마크는 분당 처리되는 명령에 기초해 트랜잭션 프로세싱 시스템 효율을 측정하는 업계표준 테스트다. 그렇기 때문에 TPC-C 평가는 전자상거래 및 다른 하이 트랜잭션(high-transaction)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확장성이 높은 최고의 시스템을 구하려는 기업들에게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MS는 자사 벤치마크 결과가 무효화된 이유에 대해 TPC가 중간에 규정을 바꿨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MS의 퍼포먼스 엔지니어링 팀의 그룹 매니저인 찰스 레바인은 "지난 6년간 오라클이 실행한 벤치마크들 가운데는 데이터 투명성 요구 조건에 부합하지 않거나 아예 이런 기준으로 테스트 받아본 적이 없는 것들이 상당수 있다"고 주장했다.

MS는 SQL 서버 2000 최신 버전을 재시험하기 위해 컴팩과 작업하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MS는 지난 2월 TPC 결과를 뒤엎는 주 원인이 됐던 데이터 투명성 기능을 추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SQL 서버 2000은 1∼2개월 내 100만 카피의 판매 기록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TPC 회장 버거트는 "어떤 회사든 TPC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며 "우리는 지난주 MS-컴팩 결과의 불승인에 대한 발표를 표결에 붙였다. 투표 결과 즉각 철회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버거트는 오라클, 컴팩, MS 모두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오라클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들이 쏟아지며 불만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지난 주 시장 예측 기관인 조나 리서치(Zona Research)사는 MS에 대한 오라클의 비밀 정보 계획을 맥카시 시대나 워터게이트와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심하게 비난했다.

조나는 리서치 기록부에 지난 수개월 동안 MS로부터 기업들과 소비자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수없이 제기돼 왔다고 적었다. 또한 "오라클의 사설탐정 고용을 시인하는 성명과 비난받아 마땅한 그러한 행위들은, 누가 오라클 같은 기업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쓰레기 스캔들(Trash-gate)을 통해 불명예를 안은 엘리슨은 이제 좀 더 가공할만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즉 자신은 제2의 빌 게이츠가 아니라는 사실을 업계에 납득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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