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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 잠자는 강호동을 건드리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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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잠정 은퇴한 강호동씨가 시쳇말로 ‘집에서 애를 보는’ 중이다. 집에 틀어박힌 채 꼼짝 않는다. 매니저와 극소수 지인(知人)을 빼고는 휴대전화도 안 받는다. “식사나 같이하자”면 거꾸로 “집으로 오라”고 한다. 사람 보기가 겁나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대인기피증을 우려할 정도다. 그는 “천하장사도 하고 스스로 참 강한 줄 알았는데, 이번 일을 겪고 보니 한없이 약하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친정인 지상파 방송마저 톱 뉴스로 때렸으니 억울할 만하다. 그래도 강씨는 “나 보고 사람 되라고 이런 일이 생겼다”며 안으로 삭이는 모양이다.

 그런 강씨를 우리 사회가 가만히 놓아두지 않고 있다. 어제 트위터에는 “오늘 오전 강호동 자택에서 숨 쉰 채 발견”이라는 장난질 멘션이 올라 그를 또 울렸다. 도가 지나치다. 여기에 한나라당조차 사전접촉도 없이 ‘영입 대상’이란 소문을 흘려 흔들어 댔다. 당 대표는 “꼴같잖은 게 대들고…. 내년에 (씨름 잘 하는) 강호동을 데려와야겠다”며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이건 예능인을 넘어 사람에 대한 기본적 예의가 아니다. 강씨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는 정치할 생각도 없고 정치할 사람도 아니다”고 입을 모으지 않는가.

 ‘강호동 흔들기’를 보면서 ‘전 사회의 예능화(藝能化)’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철수 신드롬도 ‘청춘콘서트’에서 찾는다면 짧은 생각이다. 방청객 수와 공간의 제약 때문이다. 그의 베스트셀러 저서를 읽고 환호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결정적 계기는 2009년의 ‘무릎팍 도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시청률은 16.6%. 이 프로는 이례적으로 2년 만에 ‘다시 보기’ 열풍을 불러 안 교수 신드롬을 확대재생산했다. 인터넷엔 짧게 편집한 동영상이 넘치고, 케이블TV는 재방송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강호동이 없었으면 안철수도 없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지 모른다. 그전에도 그는 유명했다. 하지만 안철수라는 이름 말고, 안철수라는 사람을 널리 알린 것은 역시 ‘무릎팍 도사’였다. 서울대 의대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때 반에서 중간 정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빌 게이츠와의 비유에 대해 “여러모로 불편하다. 규모 자체가 다르다”며 한껏 몸을 낮췄다. 이런 진솔함과 겸손이 신드롬의 원형질이 된 것이다. ‘무릎팍 도사’를 통해 뜬 것은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소설가 이외수씨도 마찬가지다. 비(非)연예인들의 인간적인 입담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공감을 부른 것이다. 이제 이들은 본업보다 사이버세계에서 더 유명 인사가 됐다.

 강호동에게 매달리는 한나라당에서 사회의 예능화에 대한 조바심이 묻어난다. ‘나꼼수’ 대항마를 찾기 위해 안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보수파는 감성정치나 논리 싸움에서 진보파를 당할 수 없다. 강도 높은 네거티브 전략도 “소설은 저한테 맡기시잖고…”라는 이외수씨의 가벼운 멘션 한 줄에 무너졌다. 오히려 보수진영은 사회의 울타리를 굳건히 지키는 데서 가치를 찾는 게 정답이다. 싸움닭보다는 “좋은 말씀입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는 여유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는 뭘 몰라”라거나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전지적(全知的) 작가 시점부터 버려야 할 듯싶다. 안정감을 주지 않는 보수파가 어떻게 안정 희구세력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강호동 자살설처럼 트위터의 부작용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나꼼수를 자극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나꼼수가) 야담과 실화까지 동원해 가카(대통령) 씹냐” “포르노라는 게 원래 노출 수위를 계속 높여 가야 해요”라는 진중권류(流)의 자정 기능을 믿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나라당이 강호동을 찝쩍대는 것은 불안감의 반영일 뿐이다. 잠자는 그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한다. 오히려 “예능은 예능인에게, 정치는 정치인에게”라고 당당하게 선을 그어야 하지 않을까. 강호동은 강호동일 때 빛난다.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MC로 끝까지 남고 싶다”는 그의 희망을 가만히 지켜볼 일이다. 내년 초께 국민 MC의 귀환을 기다려 본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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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MC

1970년

[現]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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