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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떨고 있는 회계법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내 회계법인 시장에 '대우 태풍' 이 불고 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대우그룹 12개 계열사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특별감리가 담당 회계사 소환조사 등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달말 감리결과가 발표되면 대우의 '엉터리 회계장부' 작성을 묵인하거나 방조한 회계법인과 공인회계사에 대한 무더기 처벌과 함께 손실을 본 소액주주의 민.형사 소송이 잇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실사 결과 대우 계열사의 순자산이 40조원 줄어 김우중(金宇中)전 회장 등 대우 경영진과 담당 회계법인의 책임 문제가 불거졌다.

1950년대 미국 회계법인이 겪었던 것처럼 국내에서도 회계법인들이 7월말부터 길고 험한 '징계와 소송의 터널' 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를 회계감사한 청운회계법인은 3조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적정하다' 고 판정했다가 영업정지와 투자자의 집단소송으로 지난해 문을 닫았다.

이번에도 상당수 회계법인이 이미지 실추와 함께 경제적 손실을 보고, 그 결과 국내 회계법인 시장의 판도에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김일섭 한국회계연구원장은 "그동안 감사를 잘하든 못하든 인센티브가 없었고 기업이나 회계법인들이 '서로 좋은 게 좋다' 는 식으로 일해왔다" 면서 "대우 사태로 회계법인에 대한 책임 추궁과 소송이 잇따를 경우 역설적으로 국내 회계산업과 감사 시장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 전전긍긍하는 회계법인〓금감원 대우 특별감리반 이성희 국장은 "분식회계 등에 대한 책임이 감사인에게 있는지, 기업회계 담당자에게 있는지를 면밀히 따지고 있다" 고 말했다.

산동.안건 등 대우 계열사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들은 금감원의 조사를 받고 나온 소속 회계사를 상대로 질의항목을 살피며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인맥을 동원해 당국의 처벌 수위를 알아보는 한편 감리결과 발표 이후 잇따를 투자자의 집단소송에 대비해 법률회사와 접촉하고 있다.

조사를 받고 있는 회계팀들은 금감원 직원들이 자신의 해명자료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A회계사는 "대우 부실감사의 첫째 원인은 회계법인의 불성실 감사에 있지만 당시 금융당국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면서 "그런데 당국은 회계사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고 말했다.

특히 젊은 회계사가 조사받을 때 경험많은 회계사들이 함께 가려 해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똑같은 내용을 거듭 물으면서 말 실수를 꼬투리잡아 추궁한다고 지적했다.

B회계사는 "대우자동차 매출채권의 경우 거래처가 수백만이기 때문에 표본추출해 사실을 확인할 뿐 모든 거래처와 대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면서 "회사가 잘못된 기초자료를 제공할 경우 오류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데도 이런 악조건을 당국이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고 말했다.

◇ 부실감사를 막아라〓회계법인들은 대우 특별감리 결과 발표이후 예상되는 무더기 징계로 감사시장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보고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안건회계법인은 ▶감사 계약을 하기 전에 대상기업에 대한 심사 기능을 강화하고▶회계법인 안에 심리실을 보강해 감사의견서를 법인 내 다른 회계사가 재검토하는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안건 이정희 대표는 "혈연.지연.학연에 따라 감사인을 지정하는 시대는 끝났으며 대우사태의 여파로 '위험(리스크)중시형' 감사로 감사방법이 바뀔 것" 이라고 말했다.

李대표는 "회계법인이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 있는 기업은 아무리 많은 감사수수료를 주어도 받지 않을 것" 이라고 덧붙였다.

삼일회계법인 김영식 전무는 "3~4년 전부터 수십가지 항목을 놓고 대상 기업을 평가해 적정한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감사인 지정을 거절했다" 면서 "분식을 눈감아 주지 않고 깐깐하고 투명하게 감사해야 회계법인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안진회계법인은 지난해 5월 세동을 흡수.합병한 뒤 모든 공인회계사를 제휴 회사인 아서 앤더슨에 연수를 보내 위험중시형 선진 감사기법을 배우도록 했고 이사급 이상 간부(파트너)에 대한 국내 교육을 강화했다.

안진의 전괄 상무는 "재무제표에 나타난 수치 뿐만 아니라 기업환경.업무 프로세스.의사결정 구조 등 모든 부문을 보아야 제대로 감사할 수 있다" 면서 "감사대상 기업의 부정.분식결산을 찾아내는 것 뿐만 아니라 '계속기업' 으로 존속할 수 있을 지 예측해야 회계법인이 생존할 수 있다" 고 말했다.

한국회계사회는 부실감사에 따른 투자자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손해배상공동기금을 적립하고 있으며 '리스크 보험' 가입을 추진 중이다.

◇ 대우계열사 누가 감사했나〓금융감독원이 중점적으로 특별 감리 중인 회계연도는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인 98년이다.

국내 5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산동회계법인이 그동안 대우그룹 주력 계열사의 외부감사기관이었다.

산동은 워크아웃에 들어간 대우 12개 계열사 중 대우중공업.㈜대우.쌍용자동차.대우자동차판매.다이너스클럽코리아 등 5개 계열사를 감사했다.

세동을 흡수.합병한 안진회계법인이 대우전자.경남기업.대우캐피탈 등 세곳을, 안건이 대우자동차.오리온전기 등 두곳을, 영화(대우전자부품)와 지난해 청산한 청운(대우통신)이 각각 한곳을 맡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특별감리를 통해 기업의 치부를 감춰주는 부실 외부감사의 고리를 끊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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