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또 터진 주가조작에 전전긍긍]

중앙일보

입력

투신사의 유명 펀드매니저들이 코스닥기업인 세종하이테크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고 그 대가로 세종하이테크 대주주로부터 거액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증권가는 또 한차례 '작전' 후유증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투신사들은 공적자금 투입과 부실공개 등으로 신뢰가 회복되는 시점에서 터진 이번 사건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제2, 제3의 세종하이테크 사례가 나타날 경우 시장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코스닥 붐을 타고 광범위하게 이뤄지던 시세조종작전이 마침내 덜미를 잡힌 것" 이라며 "펀드매니저를 비롯한 시장관계자들이 각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고 지적한다.

◇ 작전에도 '스톡옵션' 도입〓투신사 펀드매니저 A씨는 세종하이테크 사건을 보고 "많지도 않은 금액을 왜 현금으로 받았을까" 라며 혀를 찼다.

주식으로 받는 것이 위험부담도 적고 주가가 오를 경우 큰 차익을 챙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코스닥 붐을 타고 신규 등록기업들이 쏟아지면서 등록 전부터 광범위하게 주가조작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I.O사 등 올들어 코스닥에 진입한 기업들을 둘러싼 각종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증권사 법인팀 B씨는 "등록 이후 주식을 어느 정도 사주는 것을 조건으로 주식을 받는 경우가 있다" 면서 "주식의 경우 남의 이름으로 입고(증권사에 맡김)하면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하다" 고 밝혔다.

결국 주가를 올리는 대가로 스톡옵션을 받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 셈이다.

이같은 주가조작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가를 올려 차익을 챙기던 과거의 패턴과는 다르다.

우선 대주주와 기관투자가(투신사 펀드매니저나 증권사 직원).전주(錢主)등이 짜고 하는 것은 유사하지만 등록 전부터 판이 그려져 등록 후 단기간에 한탕 하고 마무리를 짓는다는 점이다.

올라가는 주가를 잡기 위해 뒤늦게 뛰어든 일반투자자들은 발을 뺄 기회를 잡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주가조작의 또다른 예로 최근 모증권사의 임원은 코스닥 등록기업인 G사의 전환사채를 사면서 자신이 지점장으로 있던 점포에 해당기업의 주식을 사도록 했다는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이 이번 사건에 대해 D사의 주가조작을 조사하다 부수적으로 드러났다고 밝힌 만큼 조만간 새로운 주가조작 사건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 감독당국은 뭐하나〓주가조작 등 불공정 거래에 대한 조사는 일차적으로 증권거래소와 증권업협회가 한다.

코스닥 등록기업 감리를 맡고 있는 증권업협회는 올 초부터 감리인원을 늘리고 전산시스템을 보완하는 등 애쓰고 있지만 주가조작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증권업협회가 지난해 불공정 거래 혐의가 있다고 금융감독원에 통보한 것은 시세조종 16건을 포함, 총 22건이었다.

올해는 상반기 중에 이미 지난해와 비슷한 건수를 감독원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감리를 강화한 데다 시장에서 그만큼 불공정 거래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 라며 "현재 3건에 대해 불공정거래 조사를 벌이고 있다" 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거래소나 협회로부터 넘겨 받은 것과 직권으로 인지한 사건들을 조사하고 있지만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불공정 행위를 일일이 잡아내기는 어려운 게 현실" 이라고 토로했다.

아주 가끔 불공정 행위를 입증해 검찰에 통보하는 경우에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기 일쑤다.

실제로 G사 등에 대한 조사는 지난해 말 이미 마무리지었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 C씨는 "감독당국이 주식 불공정 거래를 진정으로 차단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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