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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뛴다, 고로 존재한다” 풀코스 참가 80%가 4050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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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분당을 돌아오는 2011 중앙서울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세찬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2만 명이 넘는 출전자들이 풀코스(42.195㎞)와 10㎞로 나눠 힘찬 레이스를 펼쳤다. 이 중 1만여 명이 풀코스를 완주했다.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 병사가 죽기를 각오하고 달렸다는 42.195㎞. 전시(戰時)도 아니고 교통과 통신 수단이 눈부시게 발달한 21세기에 왜 사람들은 고통의 백리 길을 달리는 것일까. 마라톤에 숨어 있는 사회심리학적 요인들을 찾아 들어가다 보면 현대인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다.

상실의 시대’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풀코스를 30회 완주한 마라톤 매니어다. 1983년 7월, 그는 오리지널 마라톤 코스(마라톤~아테네)를 역방향으로 달려 생애 첫 풀코스를 완주했다. 하루키가 완만한 언덕의 마라톤 가도를 달리고 있다. [Kageyama Masao, 문학동네 제공]

마라톤은 단순한 운동이다. 간편한 러닝복과 러닝화를 착용하고 언제 어디서든 달리기만 하면 된다. 비용과 도구, 시설 등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 배우는 과정이 복잡하지도 않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유산소 운동으로 비만 방지에도 효과적이다. 마라톤은 자기통제와 금욕주의 같은 속성을 갖는다.

사회학자 정준영은 저서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책세상)의 마지막 장을 ‘중산층, 자기통제, 마라톤’이라는 제목 아래 풀어나간다. 그는 ‘마라톤은 주로 중산층이 즐기며, 역사적으로 중산층이 마라톤에 몰입하기 시작한 특정한 시기가 있었다’고 전제한다. 미국의 경우 그 시기는 베트남 전쟁이 끝난 1970년대 중반이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뉴욕마라톤(올해 4만7107명 참가)은 첫 대회가 열린 70년에는 참가자가 156명에 불과했지만 77년에는 5000여 명으로 32배나 증가했다.

정준영은 미국 사회의 보수화 경향과 마라톤 인구의 폭발적 성장 사이에 연관 고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등을 거치면서 미국이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흐느적거리는 국가, 너무 많이 먹고 적게 운동하며 편안함을 신성한 권리처럼 받아들이는 시민들이 있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 속에서 근면 성실하게 일하던 옛 시절로 돌아가려는 보수적 회귀 운동 중 마라톤은 극기와 자기통제의 수단으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고 썼다.

또한 마라톤은 매우 세련된 자기과시의 수단이 된다. 고급 자동차나 호사스러운 취미는 금방 남의 눈에 띈다. 하지만 마라톤은 그렇지 않다. 달린다는 사실, 달릴 수 있는 시간적·정신적 여유, 그리고 달리기를 통해 만들어진 균형 잡히고 건강한 육체만 보여줄 뿐이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마라톤뿐”
우리나라에서 마라톤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다. 중산층의 안정성이 붕괴됨으로써 우리 사회는 급속한 보수화 물결을 맞았다. 중산층의 보수화와 위기의식이 건강에 대한 관심과 맞물리며 마라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요즘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사람들에게 “왜 뜁니까”라고 물으면 대체로 두 가지 공통된 답이 나온다. 하나는 도전정신과 성취감, 또 하나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불리는 강한 중독성이다. 러너스 하이는 마라톤에서 가장 힘든 시점인 35㎞ 지점쯤에 뇌에서 베타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이 나와 고통을 잊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다.

윤영길 한국체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마라톤은 목표를 정하고 성취하는 과정이 4∼5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완결되는 구조다. 개인에게 이런 경험과 성취감이 생기는 계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풀코스를 완주한 러너들은 이렇게 말한다. “30∼35㎞ 지점에서는 너무 힘들어 ‘내가 다시는 이 짓 하나 봐라’ 하면서 뛴다. 그런데 골인 지점을 통과할 때 희열과 쾌감 때문에 다음 대회를 기다리게 된다. 직장일이고 사업이고 자식이고 뜻대로 되는 게 어디 있나. 그래도 내가 준비하고 열심히 한 만큼 내 뜻대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게 마라톤이다.”
요즘은 직장·동아리 등 단체 참가가 늘어나면서 마라톤을 조직의 일체감·협동정신 함양의 계기로 삼는 경우도 늘어났다. 또 “입양한 딸아이를 위해 뛴다” “군 입대한 아들을 생각하며 아들의 전투모를 쓰고 뛰었다”고 하는 등 개인적인 소원과 마라톤 완주를 동일시하는 경향도 생겼다.

마라톤 대회 출전자는 40대 이후가 압도적으로 많다. 2011 중앙서울마라톤 풀코스 출전자 중 40대가 38.3%, 50대가 42.0%였다. 반면 30대는 10.2%, 20대는 2.7%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명지대)는 “대한민국 남자 중년의 마라톤 열풍은 자학 수준”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저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샘앤파커스)에서 ‘중년 남자들이 하필 그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마라톤에 열광하는 이유는 존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존재 확인 방법은 ‘자학’이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썼다. 물론 김 교수는 마라톤 매니어들의 심한 항의에 시달렸다.

하루키의 묘비명은 ‘작가(그리고 러너)’
최근 들어서는 마라톤의 신체적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하루야마 시게오는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뇌내혁명(腦內革命)(사람과 책)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스포츠맨은 일반인에 비해 신체에 자주 이상이 생기고 수명도 짧다. 이들은 스포츠를 통해 돈과 명예를 얻는 대가로 자신의 육체를 기꺼이 혹사하기로 단단히 각오하고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이 이들을 흉내 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 할 수밖에 없다. 건강을 위해서 마라톤을 한다면 당장 그만두는 게 좋다. 아마추어 마라톤은 백해무익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마라톤을 하다 걷기나 등산, 사이클로 옮겨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젊은이 사이에서는 고통과 극기의 상징인 42.195㎞ 대신 10㎞ 내외의 ‘펀 런(fun run)’이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달 나이키가 주최한 ‘We Run Seoul 10K’가 광화문∼여의도의 10㎞ 코스에서 열렸다. 불과 70분 만에 3만 명 신청 접수가 마감됐다. 참가자들은 주최 측이 나눠준 빨간색 셔츠를 입고 순위와 기록에 상관없이 도심 레이스를 즐겼다.

중앙서울마라톤을 10년째 주관한 중앙일보문화사업의 진정현 과장은 “2006∼2007년을 정점으로 마라톤 대회 참가자 수가 정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새롭게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젊은 세대가 지금은 풀코스를 기피하지만 이들이 삶의 무게를 느끼는 40대가 되면 마라톤을 통해 극기와 도전, 성취감을 맛보려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풀코스 30회를 완주한 ‘마라톤 맨’이다. 그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에서 ‘내가 후천적으로 익혔던 몇 가지 습관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익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 달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써 넣고 싶다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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