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 IT업체들 줄잇는 '살생부' 에 발끈

중앙일보

입력

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의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는 지난달 28일 뉴욕의 PC엑스포 행사장에 모인 1천여명의 군중 앞에서 한 컨설팅 회사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리먼 브라더스의 이코노미스트들이 올해말께 아마존의 현금이 고갈돼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보고서를 냈다" 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보고서가 발표된 뒤 아마존의 주가는 19%가 폭락, 역대 최고치(1백13달러)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33.87달러를 기록했다.

베조스는 "아마존은 현재 수십억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올해안으로 영업 수익을 낼 것이 확실하다" 며 리먼 브라더스의 보고서 내용을 정면 반박했다.

최근 미국의 닷컴기업들이 일부 평가기관에서 내놓는 닷컴기업들의 장래에 대한 보고서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 보고서는 대체로 닷컴기업들이 심각한 자금난과 불투명한 영업전망 등으로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이며, 이 가운데는 어느 기업이 언제쯤 망할 것이라는 '살생부' 도 포함돼 있다.

나스닥시장의 주가폭락 사태 이후 가뜩이나 기가 죽은 닷컴기업들은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으나 갈수록 보고서 내용이 험악해지는데다 투자자들이 동요하는 기미를 보이자 이제 더 이상 방관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닷컴기업들은 이들 평가기관의 평가기준이 제각각이며 자의적인데다 자료도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아마존 한 회사를 놓고도 리먼 브라더스.메릴린치 등 유수한 컨설팅 회사들이 각기 다른 전망과 해석을 내놓고 있다.

메릴린치는 지난달 29일 아마존의 재무상태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회사의 인터넷 분석가인 헨리 블라젯은 "아마존이 곧 수익을 낼 것이며 그때까지 기껏해야 3억~5억달러의 현금이 추가로 소요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골드먼 삭스는 최근 주요 닷컴기업들에 대한 생존 가능성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 업계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 보고서는 32개 전자상거래 업체를 생존 가능성의 다과에 따라 3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생존 가능성이 높은 1그룹에는 아마존.e토이스 등이, 2그룹에는 드럭스토어닷컴, 홈그로서 등이 포함됐다. 전망이 어두운 3그룹에는 바이닷컴.네트워크커머스 등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닷컴기업들의 현금유동성.수익창출 등 다양한 지표를 포함하지 않은 채 골드먼 삭스가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적용하는 현금소진율.영업손실 등을 주요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닷컴기업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특히 반스앤노블.프라이스라인 등 1그룹에 속한 7개사는 주식공개시 골드먼 삭스가 주간사를 맡아 "고객을 배려한 보고서가 아니냐" 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드럭스토어닷컴측은 "상반기에 1억7천만달러의 신규 자금을 유치, 사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골드먼 삭스의 보고서가 찬물을 끼얹었다" 고 말했다.

재무상태 외에도 닷컴기업 평가의 주요 척도로 여겨지는 접속건수.광고노출 등의 통계에 있어서도 닷컴기업들의 불만은 높다. 야후.i빌리지.게이닷컴 등은 최근 미디어 메트릭스사의 평가 방식에 대해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고 비난했다.

닷컴기업들의 속내에는 오프라인 업체들을 주로 상대해온 너희들이 온라인 기업들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하는 불신도 깔려있는 것 같다.

미국의 온라인 경제잡지 배런스는 지난달 페가서스 리서치 인터내셔널의 자료를 토대로 2백27개 닷컴기업의 올 1분기 현금소진률 현황을 공개했다.

'현금 소진' 이란 적자를 보면서도 향후 영업.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어 곧 망하게 된다는 뜻이다.

배런스는 지난 3월에도 2백7개 기업을 대상으로 지난해 4분기의 현금소진률 순위를 매긴 리스트를 공개, 업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번 조사에서 기업들의 현금소진율은 3월보다 24% 가량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향후 1년내 유동성 위기에 처하게 될 기업은 66개로 오히려 7개가 늘었다.

업계에서는 지난 4월 첨단기술주가 폭락한 이후 거품론이 본격 제기되면서 평가기관들이 정확한 투자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앞다퉈 냉혹한 성적표를 내놓는 것으로 보고 있다.

평가기관들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닷컴기업들에 대한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가 시작된 이상 우리로서도 투자자들을 위한 참고자료를 내놓을 수 밖에 없다" 고 말하고 "자료에 대한 평가는 투자자들이 하는 것" 이라고 반박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