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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처리 또 연기? … 황우여 “오늘 본회의 열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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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회창 전 대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위한 ‘운명의 날’이 또 연기됐다. 민주노동당의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 점거로 여야가 3일에 이어 10일 국회 본회의를 취소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9일 밤 기자와의 통화에서 “외통위에서 비준안이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어서 10일 본회의를 열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과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타결이 되면) 언제든 다시 소집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본회의 일정 취소는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는 “10일 오전에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FTA 비준안의 직권상정을 요청해 보겠다”면서도 “앞으로 본회의를 열 수 있을지는 의장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마지막 수단으로 의지하는 본회의 직권상정도 박희태 의장이 “최소한 외통위는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실현 가능성이 낮은 상태다.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 9일 행정안전위 회의장을 빌려 외교통상부의 새해 예산안을 의결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김형수 기자]

 국회 외통위는 지난달 31일부터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보좌진의 회의장 점거로 ‘곁방살이’를 하고 있다. 9일 외통위가 새해 예산안을 심의한 곳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장이었다. 외통위원인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는 회의 도중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외통위 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는데, 회의를 막는 사람들은 쫓아내야 한다. 상임위원장의 질서유지권은 왜 있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리기에 이르렀다.

 10일 본회의가 취소되는 등 여야의 ‘FTA 대치’가 장기화하면서 각 당에선 강경한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이날 최고 ·중진의원회의에서 “한·미 FTA 문제는 이제 막바지에 왔다”며 “(FTA 비준안 처리는) 국익과 국민을 위한 결단이기 때문에 야당의 폭력 점거에 당당히 맞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친이명박계인 고흥길·심재철 의원은 “원내대표가 FTA 비준안을 처리하지 못할 거면 빨리 원내대표에서 물러나라”며 황우여 원내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황 원내대표와 남경필 외통위원장 같은 대야협상파는 끝까지 야당과 대화의 끈을 놓지 말자고 주장했다. 황 원내대표는 “지금은 겨울 산을 밤에 전진해야 하는 것과 같은 위험한 상황”이라며 “설산(雪山)을 우리가 실수 없이 가려면 인고의 옷을 두텁게 입고 지혜의 등을 켜고 용기의 신을 신고 간다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날 민주당 지도부가 강봉균·김성곤 의원 등 내부 온건파 40명이 마련한 절충안(국회 비준을 먼저 한 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인 ISD에 대해 재협상)을 거부하면서 협상파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민주당 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강봉균·김성곤 의원은 8일 오후 손학규 대표를 찾아가 자신들이 마련한 절충안에 대해 설명했으나 손 대표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당이 지금까지 견지해온 입장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절충’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까지 이날 외통위 회의에서 “ISD 조항 자체를 없애자는 존폐 여부에 관해선 재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는 바람에 민주당 온건파의 주장도 하루 만에 물거품이 됐다.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정부에 ISD 재협상 여부를 타진해보니 ‘노(No)’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글=정효식·강기헌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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