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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좌도 우도 아니다” 대학생 FTA 토론, 괴담은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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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 전체적으론 이득이겠지만 농업·중소기업 등 손해 보는 분야에 대한 지원이 부족합니다.”

 8일 오후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강의실. 경제학과 정재환 교수의 ‘국제통상론’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수업에선 한·미 FTA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3, 4학년 전공 심화 과목인 이 수업에 참석한 학생 80여 명의 입에선 ‘비교우위’ ‘기회비용’ 같은 용어가 튀어나왔다. 영국의 애덤 스미스 같은 경제학자들의 이름도 거론됐다. 정 교수는 “인터넷 등에 사실과 다른 정보가 너무 많아 경제학 이론에 기반한 합리적인 논의가 전개돼야 한다는 생각에 토론 수업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찬반으로 나뉘어 토론을 벌였지만 ‘FTA가 통과되면 사실상 미국의 지배를 받는다’ ‘의료보험은 파탄 나게 된다’ 등의 ‘괴담’은 나오지 않았다. 황태웅(25·영문과)씨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보다 많은 나라와 FTA를 체결하는 게 이득”이라며 “물론 피해를 보는 산업에 대해선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성진(26·경제학과)씨는 “FTA를 맺으면 우리 농업은 사라질 것”이라며 “식량 부족 문제가 발생하면 국가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주동혁(24·시스템경영공학과)씨는 “칠레에서 포도가 들어왔다고 해서 우리 포도 농가가 망하지 않았고, 미국 오렌지가 들어왔다고 귤 농가가 폐업하지 않았다”며 “얼마 전 배추를 초과 생산해 다 갈아 엎은 적이 있는데 FTA는 오히려 우리 농업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반박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원지훈(25·경제학과)씨는 “반도체·휴대전화·자동차 등의 대기업은 이득을 보겠지만 중소기업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정부가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과 FTA를 동시에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정은(23·경제학과)씨는 “대기업만 이득을 보기보다는 국가의 전체적인 부(富)가 느는 것”이라며 “부를 어떻게 배분하느냐는 정부가 국내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미 FTA를 둘러싼 논쟁이 너무 정치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경제적인 득실을 따져야 하는 문제인데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팩트(사실)를 과장하거나 감정적인 주장만 내놓는다.” (이경·23·경제학과) “대다수 일반 국민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어떤 주장이든 근거가 명확한 얘기를 듣고 싶다. 거짓 선동이 난무하는 것은 한나라당이 두루뭉술하게 대처해 온 탓이다.”(전온샘·24·통계학과)

 9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국제금융세미나’ 수업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경제학과 오정근 교수의 강의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박재범(27·경제학과)씨는 “찬반 의견을 모두 조사해 봤는데 국내 총생산 증가 효과는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소득 불평등 문제에 대한 점검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종길(25·서어서문과)씨는 “세계적인 시장개방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은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소득 분포의 불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파레토의 법칙’을 통해 최적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논란에 대해 발표한 양계원(27·경제학과)씨는 “법 체계가 다른 우리나라에 미국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생소한 제도여서 일반 국민이 의심을 거둘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선욱·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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