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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10년 만의 연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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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주철환
JTBC 편성본부장

개국이 임박하니 여기저기서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다. 근황을 묻는 전화가 빗발친다. “정신 없지?”라는 물음엔 간략한 답변이 준비돼 있다. “정신 없으면 일 못 하죠.” 두 번째 질문은 주관식이다. “기분이 어때?” 시침 뚝 떼고 정답을 말한다. “설레죠.” 설렘은 ‘조마조마’가 아니라 ‘두근두근’이다. 첫 미니시리즈 제목이 정우성 주연의 ‘빠담 빠담’인데 부제 또한 참 ‘개국’스럽다. ‘그와 그녀의 심장 박동소리’ 좋지 아니한가. 노희경 작가에게 감사 전화라도 해야겠다.

 특집쇼에도 ‘설렘’을 담았다. ‘부활 TBC 탄생 JTBC 개국 축하 쇼쇼쇼’ “제목이 좀 장황한 거 아냐?”라고 묻기에 “열여덟 글자에 담기에 31년은 좀 긴 시간이죠”라고 겸손하게 대꾸했다. 오프닝에 음악을 넣는다면 누가 좋을까. 김태원이 이끄는 그룹 부활에게 ‘네버엔딩 스토리’를 부탁할까, 아니면 내친김에 가왕(歌王)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초대해 ‘미지의 세계’를 들려달라고 간청할까. 여하튼 큐시트에 이런저런 이름을 대입하는 상상만으로도 온종일 설렌다.

 개국 축하쇼가 각별한 까닭이 또 있다. 내가 직접 연출을 맡았기 때문이다. 얼마 만인가. 1999년 12월 20일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공연한 ‘민족통일음악회’(MBC)가 나의 20세기 마지막 연출 작품이었다. 남북의 대중가수들이 한목소리로 ‘반갑습니다’와 ‘다시 만납시다’를 부르던 장면이 엊그제 본 영화처럼 삼삼하다.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후 ‘실습’삼아 연출한 프로가 ‘스타 도네이션 꿈은 이루어진다’(SBS)였는데 그것도 벌써 10년 전 일이다. 연예인들이 일일 포장마차를 열어 번 수익금 전액을 이웃에 기부하는 포맷이었다.

 ‘쇼쇼쇼’는 TBC의 대표적 예능 브랜드였다. 거기서 처음 조영남의 ‘딜라일라’를 들었고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을 따라 불렀다. 돌아보면 나의 사춘기를 ‘유쾌한 혼란’에 빠뜨린 주역이 바로 ‘쇼쇼쇼’였다. 그런데 내가 그 쇼의 부활을 연출하다니. 다시 혼란이 밀려오면서 ‘연출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연출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시청자의 행복이다. 시청자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연출의 명분이 없다. 자, 그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 탐험가가 발견을 하고 과학자가 발명을 한다면 연출가는 발탁을 한다. 누구를 고르느냐. 그게 승부를 좌우한다. 드라마, 예능 PD의 기본 조건은 안목이다. 능력 있는 작가와 매력 있는 출연자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시력이 아니라 시각과 시선이 중요하다. 새로운 시각과 따스한 시선으로 그들을 홀려(?)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공동의 목표를 향해 대오를 짜 매진해야 한다.

 PD가 직업상 가장 많이 외치는 단어는 ‘스탠바이’다. 그 신호가 떨어지면 스튜디오나 야외촬영장엔 일순 고요가 흐른다. 출연자와 스태프 모두 숨을 죽인다. 그 적막을 허무는 단어가 바로 ‘큐’ 혹은 ‘액션’이다. 배우는 갑자기 상대방의 뺨을 후려치기도 하고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훔치기도 한다. 그런 ‘짓’을 중지시키는 연출가의 외침 또한 간결하다. 하나는 NG, 다른 하나는 OK다. OK는 한 번이지만 NG는 수도 없이 난다. NG를 두려워하거나 지겨워한다면 그는 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란 누구인가. 밥을 평생 지은 어머니가 밥 전문가는 아니듯이 오래 했다고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다. 전문가는 모름지기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이고 또한 그것이 다수를 만족시켜야 한다.

 설렌다. 당분간 잠도 오지 않을 듯하다. 우선 입부터 푸는 연습을 해야겠다. 스탠바이, 큐.

주철환 JTBC 편성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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