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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저-알리 대결, 70년대에도 위성 생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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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1971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조 프레이저와 무하마드 알리의 첫 대결. 15회에 알리를 다운시킨 프레이저가 중립코너로 향하고 있다. [AP]

고인이 된 조 프레이저는 무하마드 알리, 조지 포먼과 함께 현대 헤비급 복싱의 황금기를 만든 선수다. 이들이 활약하기 전에도 스타는 많았다. 초대 헤비급 챔피언으로 간주되는 존 설리번에서 비롯된 헤비급 챔피언의 역사는 영화 ‘복서’의 실제 인물이며 ‘황금의 미소’로 불린 잭 존슨,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 ‘백인의 자랑’ 로키 마르시아노, 가장 미국적인 헤비급 복서로 불린 잭 뎀프시 등 무수한 스타를 낳았다.

 그러나 1970년대는 알리, 프레이저, 포먼 등 불세출의 철권이 동시대에 전성기를 누린 시대다. 여기에 켄 노턴, 어니 세이버스, 조 버그너 등 준척급 스타들이 군웅할거하며 끊임없이 명승부를 생산해냈다.

 역사에 길이 남는 스타는 대개 라이벌전으로 팬들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다. 조 루이스는 25차례나 헤비급 타이틀을 방어한 위대한 복서다. 그러나 그는 나치 독일이 자랑한 막스 슈멜링과의 두 차례 대결(1승1패)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80년대에 가운데 중(中)자를 쓰는 중량급의 전성기도 슈거 레이 레너드, 토머스 헌스, 마빈 해글러, 로베르토 두란 등이 차례로 라이벌전을 벌이며 화제를 양산했기에 가능했다. 알리와 프레이저의 세 차례에 걸친 대결과 ‘킨샤사의 충격’으로 불리는 알리와 포먼의 대결은 70년대 헤비급을 상징하는 명승부다. 노턴이나 세이버스도 단지 알리나 포먼의 희생자에 그치지 않았기에 후세에 이름을 날렸다. 특히 노턴은 1973년 3월 31일 샌디에이고에서 무시무시한 훅을 휘둘러 알리의 턱뼈를 부숴버림으로써 단숨에 ‘100만불 복서’의 반열에 올랐다.

 70년대는 미국 대중문화의 전성기였고, 그 강렬한 힘은 한국에도 태양풍과 같은 영향을 미쳤다. 개발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은 마치 영화 세트 같은 화려한 링에서 주먹을 섞는 거구의 복서들을 전설 속의 거인 ‘티탄’처럼 신비감을 간직한 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알리와 포먼, 프레이저의 경기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위성 생중계됐다. 활발하게 복싱 경기를 중계한 TBC의 브라운관에는 ‘우주중계’라는 자막이 떴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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