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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35) 국회의원 당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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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성일이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순간 아내 엄앵란에게 기쁨의 키스를 하고 있다. 부끄러워하는 엄앵란의 표정이 재미있다. [중앙포토]

두 번의 실패. 16대 총선(2000년 4월 13일)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96년 15대 선거에서 떨어진 후 ‘강신성일은 얼마 후 서울로 보따리 싸서 올라갈 사람’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상대 진영에서 내가 대구에 애착이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퍼뜨린 것이다. 15대 선거 당시 내가 살던 대구 신천주공APT가 전세였기 때문. 이런 사정을 아는 포항 큰형님이 지금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의 33평 아파트를 9500만원에 사주셨다. ‘전세 문제’에 대한 입막음이 됐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대구 동구 갑 지역구에 변화가 생겼다. 대구 동구 갑과 을이 대구 동구로 통합됐다. 당시 동구 갑·을을 합쳐 약 31만 2000명이었는데 분구(分區) 기준이 되는 32만 명에 조금 못 미쳤다. 20개 동과 16개 재래시장이 통합 동구 안에 들어갔다. 그 넓은 지역을 관리하는 방법은 산악회밖에 없었다. 주말마다 사람들을 차에 태우고 주왕산·문경새재 등 경북 일대 산이란 산을 돌아다녔다. 어떤 때는 관광버스를 10대 동원해 한꺼번에 500~600명과 움직이기도 했다. 돈이 한 없이 들어갔다.

 관광버스마다 들어가 술을 한 잔씩 해야 했다. 술을 잘 하지 못하는 나로선 괴로운 일이었다. 관광버스에서는 춤판이 벌어졌다. 모두들 하는데 나만 안 할 수 없었다. 주말이 되면 눈코 뜰 새 없이 온갖 주례에 불려 다녔다. 과거 부패했던 우리네 선거판을 실감했다.

 지금처럼 선거비용·방식을 제한해 놓은 것은 잘한 일이다. 15대 선거까지만 해도 길바닥에는 후보자의 버려진 명함이 쫙 깔려 있었다. 후보자들은 플래카드도 원하는 만큼 걸 수 있었다. 돈을 많이 뿌리는 사람이 무조건 유리했다.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16대 총선에서는 선거법이 바뀌어 돈이 많이 들지 않게 됐다. 15대에 비해 10%도 안 썼다.

 15대 선거에서 내게 승리한 자민련의 김복동 의원은 16대 총선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워낙 술을 좋아한 탓에 건강을 잃었다. 16대 총선일 엿새 후에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라이벌이었던 그의 불출마로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었다. 78%의 득표율(8만9000표)로 압승을 거두었다. 16대 선거에서 전주의 정동영, 익산의 이협(이상 민주당)에 이어 전국 세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세 번의 도전 만에 당선됐으니 큰 감동이었다. ‘당선가능’ 1호로 가장 먼저 TV화면에 소개됐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사무실에 있던 조니 워커를 따서 모두에게 술을 돌렸다. 술 취한 채로 당선 인터뷰를 했다. 나의 욱하는 기질을 잘 알고 있던 아내는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국회에 들어가서 보니 더 가관이었다. 한 타에 10만원짜리 골프 치는 사람, 각종 지원금을 자기 주머니에 넣는 사람 등등. 왜 모두 국회의원 하려고 기를 쓰는지 알 것 같았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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