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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박수칠 때 떠나라

중앙일보

입력

서세원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연예인 중 한 사람이다.화요일의〈서세원쇼〉(KBS2)를 시작으로 목요일은 〈서세원의 야!한밤에〉(KBS2),그리고 주말엔 〈좋은 세상 만들기〉(SBS)와 〈일요일 일요일밤에〉(MBC)등 3개 공중파 채널에서 무려 4개의 오락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가히 방송계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비슷한 연배 중에는 이미 물 건너간 이가 다수이고 여전히 물을 못 만난 이들도 수두룩한데 데뷔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그는 물이 올라 있다.서세원의 시대를 밀고가는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무대 장악력에서 그는 지존이다.순발력의 황제이다.햄릿보다는 동키호테에 가깝지만 계산된 실수조차도 결코 관객을 부담스럽게 만들지 않는다.편안한 이미지는 해묵어도 싫증나지 않는 그의 재산이다.독서열 또한 이미 방송가에 정평이 나 있다.

상대를 긴장해제시키는 독심술의 상당 부분은 꾸준한 책 읽기에서 따온 열매라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그러나 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혹은 종합된 비장의 핵무기는 바로 두려움 없는 그의 입담이다.

말장난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경솔한 예단이다.말장난은 손장난이나 불장난보다 덜 위험하고 더 재미 있다.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 녹아 있을수록 그것은 빛을 발한다.말장난은 말로 장난치는 게 아니다.

고도의 정신력으로 세상을 조롱하거나 훈계하는 행위다.지나치면 곤란하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이야말로 일종의 말장난이다.지나친 것치고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심지어 예절조차도 지나친 것은 아름답지 않다.따라서 적당한 말장난은 개인의 정서순화는 물론 사회정화에도 도움을 준다.

그의 이름을 딴 〈서세원쇼〉는 두 개의 꼭지로 구성되는데 화제가 되는 건 단연 '토크박스' 다.말깨나 하는 연예인치고 이 코너에 초대되지 않은 이를 찾기 힘들다.여기서 그 숨은 기량이 발견(발굴) 되어 여기저기 다른 프로그램에 불려다니는 연예인도 부지기수다.편성의 비무장지대여서인지(MBC 와 SBS는 서로 짠 건지 함께 피한 건지 모두 시사교양 종목이다)시청률도 가히 독보적이다.

하.지.만.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수십 고개를 넘어오면서 천하의 서세원도 이따금 지친 모습을 보인다.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건 단순히 투자의 전략만은 아니다.서세원이 그의 재능과 정열을 4개의 다른 바구니에 나눠 담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그의 포트폴리오 전략은 수정되어야 할 시점에 이른 듯하다.그에게선 얼핏 방전의 냄새가 난다.

'박수칠 때 떠나라' 는 원래 농촌드라마〈전원일기〉첫회의 부제였는데 요즘 동일한 제목의 연극도 공연되고 있다.진정한 꾀는 때를 잘 다스리는 것이다.그는 지혜롭고 너그러운 자이므로 행여 오해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사실 그는 나의 오랜 친구이다)아주 떠나라는 게 아니고 충전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뜻임을 그가 모를 리 없다.

한국방송의 3대 고질병은 벗기기와 베끼기와 겹치기다.벗기기는 인간성을 마모시키고 베끼기는 창의성을 고갈시킨다.겹치기는 실행하는 자나 지켜보는 자 모두를 피곤하게 만든다.즐거움을 뺏는 행위이며 나눔의 미덕을 가로채는 행위이다.서세원은 잠시 쉬어라.아니면 토크박스에 전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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