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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팔았더니 ‘월급’ 생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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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주택 상팔자’. 얼마 전까지 유행한 말이다. 부동산 경기의 침체를 반영한다. 요즘엔 ‘무(無)주식 상팔자’가 유행어다. 유럽 재정위기가 촉발한 주식시장의 쇼크를 반영한다. 코스피지수는 한때 1650선까지 밀리기도 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지만 앞으로 주식이 과연 돈이 될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이모(50)씨는 ‘상팔자’ 신세다. 집도 주식도 없다. ‘은퇴 후에도 현재 월급의 70%가 매달 현금으로 나오게 하겠다’. 은퇴를 대비한 그의 재무목표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그리고 매달 225만원씩 붓고 있는 개인연금으로는 힘들다. 그래서 5년 전부터 자산 리밸런싱(재조정)에 들어갔다. 집을 정리했고 지수 3000은 간다는 낙관론에도 주식에 손을 안 댔다. 별일이 없는 한 5년 후 은퇴쯤엔 그의 목표가 무난히 달성될 전망이다.

집은 성역 아니라 투자자산일 뿐

 “미쳤냐는 소리 좀 들었습니다.”

 2006년 말, 아파트를 팔겠다고 했더니 열이면 아홉은 ‘제정신이냐’는 반응이었다. 아파트, 특히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솟던 시절이다. 1993년 1억3000만원에 산 33평짜리 아파트가 99년 재건축에 들어갔다. 1억3000만원을 더 넣었다. 2003년 41평을 받아 입주했더니 8억5000만원이 돼 있었다. 그리고 3년을 더 살았더니 13억~14억원에 거래됐다.

 “세금과 물가, 다른 금융상품들 수익에 비춰 집값도 매년 8%씩은 올라야 된다는 계산이 나왔는데,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더군요.”

 정신은 멀쩡했다. 집 때문에 내는 세금만 매년 1000만원 가까이 됐다. 세금 부담에 물가 오르는 걸 감안하면 이 아파트가 올해 13억원, 내년엔 14억원, 3년 뒤엔 17억원이 돼야 했다. 아니라는 답이 나왔다. 이자를 감안할 때 매달 600만원을 깔고 잘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집도 ‘성역’이 아니라 ‘투자자산’일 뿐이죠.”

 집을 팔고 같은 아파트 단지의 비슷한 평형대로 이사했다. 전세금 4억5000만원에 여러 가지를 제하고 나니 9억원이 남았다. 일단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넣어 투자기회를 봤다. 연 7% 안팎의 채권을 주로 골라 투자했다. 현재 이 돈 가운데 5억원은 2009년 3월에 발행된 현대커머셜 후순위채에 들어가 있다. 발행금리가 연 8%, 만기는 5년6개월이다. 현대커머셜은 현대캐피탈 기업금융 부문이 분사한 회사다. 현대자동차 그룹에 속한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전체 지분의 70%를 보유하고 있다. 만기가 되는 2014년까지 회사가 망할 리 없다는 자신이 들었다. 게다가 매월 이자를 주는 이표채다. 세금 제하고 나면 매달 300만원 가까이 나온다. 부인은 “월급받는 것 같다”며 좋아한다.

원칙을 지키니 자산을 지켰다

 “원금은 절대 깨지 않는다가 제 철칙입니다.”

 이씨가 답한 자산을 지킨 비결이다. 2007년 주식시장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로 들어섰다.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향해 전진했다. 주식에 펀드 광풍이 불어닥친 한 해였다. 그러나 이씨는 광풍에서 한 발 비켜서 있었다. 증권회사 임원이라 주식투자가 자유롭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원금은 까먹지 않는다’는 깐깐한 이씨의 투자철학 때문이다.

 “주식 투자는 정말 시장이 말도 안 되게 쌀 때 우량주만 골라 합니다.”

이씨가 주식 투자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증권회사 임직원의 주식투자를 허용한 증권저축 계좌로 일부 투자한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그가 주식에 투자한 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업계 대표 회사 주식이나 대기업 계열사 주식이 액면가에도 못 미칠 때나 2008년처럼 코스피지수가 1000선을 깨고 내려갈 정도로 시장이 위축됐을 때만 주식에 손을 댄다.

 “예금보다 이자는 높고 위험하지는 않은 회사채를 좋아하죠.”

 그래서 이씨의 포트폴리오에는 주로 회사채가 담겨 있다. 지난 5월에는 두산건설 전환사채(CB)를 4억원어치 샀다. 표면이자율 4%에 만기수익률 7.5%다. 그때만 해도 시장에는 낙관론이 지배할 때다. 주가가 오를 것 같다고 점치는 사람들이 많아 CB는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이씨가 보기엔 시장이 불안했다. 주식보다는 주식 성격을 가진 채권을 골랐다. 게다가 두산건설의 신용등급은 A-. 대주주인 두산중공업의 지분율이 72.75%에 이른다. 두산건설에 행여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두산중공업의 지분율이 높아 망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명의를 바꾸니 세금이 줄었다

 “부인은 선택이지만 자식은 아니잖아요.”

 가족에 대한 이씨의 태도는 명확하다. 부인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다. 죽을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평균 수명으로 따지면 부인이 자신보다 오래 살 것이다. 죽고 난 다음 부인이 살 길을 찾아줘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부인에게 증여한 돈이 없다면 6억원까지는 세금을 안 내도 된다. 나중에 10년이 지나면 그때 또 6억원까지는 증여세 면제다. 어차피 자식에게 줄 돈인데 바로 자녀에게 증여하는 게 낫지 않으냐고? 아니다. 애들은 자기 밥벌이를 할 때까지만 챙겨주면 된다. 대학 학비가 끝이다.

 “2009년 모든 재산 명의를 부인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2009년에 산 현대커머셜 회사채도 부인 명의다. 아파트 팔아 생긴 돈과 그간 저축한 돈을 보태 그해 초에 산 경기도 분당의 땅 991.74㎡(300평)도 부인 앞으로 했다. 노후를 보낼 생각으로 6억원 주고 샀는데 지금 시세가 두 배로 뛰었다. 그해 증여세 등 각종 세금으로만 수억원을 냈다. 국세청에서 우수납세자에 선정됐다고 알려왔다. 목돈이 나가기는 했지만 앞으로 낼 세금은 별로 없다. 이씨 연봉은 3억원 수준. 여기에 회사채에서 나오는 이자가 4000만원이 넘으면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이다. 15.4%가 아니라 최고 세율인 38.5%의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금융자산이 부인 앞으로 돼 있으니 15.4% 세금만 떼면 된다. 부인 노후를 위해 명의 리밸런싱을 했더니 세금 부담도 줄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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