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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을 때 겸손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2호 18면

일단 겨루면 지고 싶지는 않은 게 사람의 본성 중 하나다. 걸음마하는 아이도 음식이나 장난감 때문에 싸운다. 팔다리가 불편한 요양원 노인들도 하찮은 일로 곧장 언성을 높이고 다툰다. 국가·인종·기업·종교 간 갈등 등 모든 분쟁의 바닥에는 이런 권력 콤플렉스가 숨어 있다. 물론 권력욕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의미에서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면 건전하게 발전할 토대가 되기도 한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세련되게 조직화된 형식과 의식(Ritual)으로 권력 콤플렉스를 승화시킬 토양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은 정치가 할 일이다. 이론적으로 정치인들은 사람들의 갈등을 조정하라는 역할을 위임받지만 실제로는 권력 콤플렉스의 노예가 돼 상황을 더 극단적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카다피·후세인·김정일처럼 병적 권력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독재자들을 보면 병적인 징후들을 공통적으로 보인다.

우선 우리 편과 적을 철저하게 나눈다. 지도자로서 꼭 필요한 일은 제쳐 두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미 제국주의와 주체사상, 기독교와 무슬림, 시아와 수니, 진보와 보수 등등 편 가르고 음모 만들기에 열중한다. 나를 따르면 지상낙원이 실현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모든 잘못은 상대에게 있는 것이고, 내 편은 모두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고 강변한다. 추종자들에게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며 회의론이나 타협의 목소리는 배반자 취급한다. 일종의 사교(Cult) 집단들이다.

꼭 독재자가 아니더라도 승자가 돼 권력을 잡으면 권력 콤플렉스에 사로잡히게 되어 병적인 자기애적 성향이 증폭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권력의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는 이들만 모여들고, 패권 싸움의 와중에 겪었던 일들을 앙갚음해 주고 싶어진다. 한 번 권력을 잡으면 쉽게 놓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카다피나 후세인 같은 독재자들만이 비참한 최후가 올 때까지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 콤플렉스의 노예가 되면 아파트 관리, 부녀회, 동창회, 조합 등등 별것 아닌 자리와 이권 다툼에도 험한 꼴을 보인다. 승부에서 이겨 강자의 입장에 서더라도 자아가 팽창돼 우쭐해지다 결국에는 패배자보다 더 흉하게 망가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자신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이 여러 사람에게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미리 조심하는 지도자는 많지 않다. 승자의 위치에 오르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는 인수합병(M&A)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겨루기에 적용된다.

주역의 28번째 괘 대과(大過)는 무릇 정상에 오를 때가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경고한다. 처참하게 진 쪽은 적어도 겸손하게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수 있지만, 싸움에서 이기면 스스로의 허물을 들여다볼 기회를 놓쳐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게 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정치의 목적은 이기고 지는 게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데 있다. 경제가 잘 돌아가고 복지가 잘 돼 있으면 사람들은 정치에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임금이 누군지 왜 알아야 되느냐는 요순시대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몇몇 강소국이 참 많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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