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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 네팔 소년 히테시에게 나뭇짐 대신 책가방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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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길을 걸을 때, 혼자 걷는 것보다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즐겁다. 같이 걸으면 행복해지는 ‘동행(同幸)’. 중앙일보와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가 마음 따뜻한 동행을 시작한다. 구독료의 절반을 굿네이버스의 해외구호개발사업에 후원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신문을 읽는 것만으로 해외의 소외된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줄 수 있다. 이번 행복동행에서는 엄마의 마음으로 품어줄 ‘맘센터’가 필요한 네팔 꺼이랄리 지역의 아이들을 만났다.

네팔 꺼이랄리, 글·사진=이예지 행복동행 기자

지난 18일 네팔의 꺼이랄리 지역에서 13세 소년 히테시가 무거운 나뭇짐을 나르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촌 동생은 형 뒤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1 세 살 때 아버지를, 열 살 때 어머니를 잃다

아버지는 세 살 때 돌아가셨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3년 전, 어머니 역시 갑자기 사라졌다. 어디에 있는지, 살아계시기나 한지, 아무도 모른다. 하나 뿐인 형도 만날 수 없다. 인도로 돈을 벌러 간 뒤 연락이 끊겼다. 1년 반 전쯤 인도의 작업장 근처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2 삼촌네 여섯 식구의 생계를 떠맡다

혼자 남겨진 뒤 삼촌 집에 왔다. 삼촌은 변변한 일거리가 없는 네팔을 떠나 돈을 벌러 혼자 인도로 갔다. 삼촌과 숙모에게는 이미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다. 얼마 전 숙모는 다섯째 아이를 낳았다. 막내는 이제 17주가 조금 넘었다. 산후 조리와 육아로 숙모는 일을 할 수 없다. 내가 벌어야 한다.

#3 학교에 가고 싶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

지난해 처음 학교란 곳을 갔다. 글자를 처음 써봤다. 이제 이름도 쓸 수 있고, 남들이 하는 말도 받아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어 6개월째 학교에 못가고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학생’이라고 한다. 공부하고 싶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

네팔에서 가장 축복받은 절기라 말하는 10월. 찌는 듯한 더위와 비가 내리는 우기가 지나고 추수를 하는 이 무렵엔 우리나라 추석과 같은 ‘더싸인’과 힌두교 행사인 ‘띠알’ 등의 축제가 이어진다. 그러나 이 계절에도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인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꺼이랄리 지역의 아이들이다. 13세 소년 히테시를 만난 그곳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로 10시간을 꼬박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였다.

현지인들은 “이제는 선선한 날씨”라고 표현하지만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의 온도는 25도가 넘었다. 히테시는 자기 키만한 길이의 나뭇짐을 머리에 지고 있었다. 집 근처 숲에서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가는 참이었다. 다가가 그 나뭇짐을 들어보니 성인 남자도 들기 힘들 정도의 무게였다.

히테시는 아침을 먹고 바로 숲으로 나와 하루에 5~7번 정도 집을 오가며 나뭇가지를 주워 나른다.

이렇게 모은 나무의 반은 집에서 연료로 사용하고 반은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마트에 내다 판다. 한 단을 팔고 받는 돈은 50루피. 우리나라 돈으로 750원이다. 이 돈으로 히테시와 숙모, 사촌동생 5명이 생활을 한다. 다른 집 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건 흔치 않은 일이다.

집에 돌아와 짐을 내렸지만 서있는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골반이 왼쪽으로 튀어나와 있어 짝다리를 짚고 서있는 것 같았다. 똑바로 서 보겠냐는 질문에 히테시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 똑바로 서 있잖아요”라고 되물었다. 오랫동안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다닌 탓에 척추가 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히테시는 “가끔 허리가 아프고 목 뒤가 당겨오긴 하지만 ‘무거운 걸 들고 다녀서 그런 거다’라고 생각하며 참는다”고 말했다.

히테시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지난해 처음 학교 갔을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또래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글씨도 배웠다.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국어인 ‘네팔어’ 시간.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배운다는 칭찬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학교를 못 가고 있다. 3달러 정도의 입학금만 내면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지만, 먹고 사는 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꺼이랄리 지역에선 히테시와 같이 노동하는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역 주민 10명 중 3명이 하루 1달러 미만의 생활비로 살아가기 때문에 아이들이 일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들 여긴다. 가장 흔한 게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나르거나, 꺼이랄리 강가에서 실어오는 돌을 잘게 부수어 건축자재를 만드는 일이다. 히테시와 같은 나이인 마헤시는 돌 깨는 일을 하고 있다. 부모님과 두 누나까지 온가족이 매달려 한 달 동안 주어진 일감을 끝내야 일당 2달러씩을 정산받을 수 있다. 마헤시는 2주 전 돌을 깨다가 엄지손가락을 정통으로 내려쳤다. 손톱부분이 까맣게 죽었지만, 치료도 받지 못하고 다음날 다시 돌을 깨러 나갔다. 돌 깨는 기계가 있지만 가격도 비싸고 사람 손으로 깬 돌이 더 튼튼하다는 생각 때문에 여전히 많은 아이들의 노동력이 착취당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네팔지부의 고성훈 지부장은 “아이들의 노동력이 착취되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은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며 “기본적인 아동들의 권리 보호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어른들의 인식개선을 할 만한 교육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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