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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31) 파친코 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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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985년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주최한 파티에 초청된 신성일·엄앵란(가운데) 부부 곁에 이주일(왼쪽)과 문희(오른쪽)가 보인다. 이날 조용필과 이주일은 신성일 부부를 깍듯하게 대했다. [중앙포토]

사람 때문에 울고 웃는다. 1981년 11대 총선 패배 후 대구에서 아내의 식당 일을 거들며 지냈다. 가뭄에 콩 나듯 영화에 출연했지만 거의 백수건달이었다. 우리 부부는 85년 7월 14일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프랑스 독립기념일(7월 14일) 기념파티에 초청 받았다. 총선을 치르느라 험하게 사용한 우리 자동차는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파티가 끝나고 나오자 조용필과 이주일이 주차장 입구에 서 있었다.

  “왜 안가요?” “선생님 가시는 것 보고 가겠습니다.”

 조용필과 이주일은 한창 잘 나가고 있었다. 이들의 차는 최신형 벤츠였다. 그 때 주차요원이 덜덜거리는 우리 차를 몰고 왔다. 두 사람은 우리 내외를 공손하게 배웅했다. 다음 날 모 일간지에 조용필과 이주일이 선배를 깍듯이 모신다는 미담 기사가 났다.

 87년 또 하나의 인연을 만났다. ‘파친코 왕’ 정덕일이었다. 지인의 주선으로 인천 연안부두 근처에 자리한 뉴스타호텔 오프닝에 참가했다가 그 호텔의 호스트인 그를 만났다. 그는 나를 깍듯하게 대했다.

우리 부부는 불자라는 인연으로 그의 어머니와 친해졌다. 정덕중·정덕진·정덕일 삼형제와 한가족처럼 지냈다. 정덕진·정덕일 형제의 사업은 눈에 띄게 번창했다. 정덕일은 석촌호수 맞은편에 뉴스타호텔을 또 냈다. 엄밀하게 따져 그의 사업은 구슬이 떨어지는 일본식 파친코가 아니라 슬롯머신이었다.

 어느 날 그가 “신형, 정치 좀 하시죠”라고 말했다. 나를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싶어한 것이다. “난 정치 안 해요.” “그럼 뭐하고 싶어요?” “영화 만들고 싶지.”

 정덕일은 그 자리에서 내게 수표로 1억원을 줬다. 나는 그 돈으로 ‘성일시네마트’를 설립하고, 충무로 대원호텔 814·815호를 터서 영화사 사무실로 썼다. 같은 층 818호가 남산의 충무로 분실이었다.

 90년대 초반 무렵이다. 정덕일이 6공의 ‘넘버2’ 박철언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박철언은 내 경북고 후배 중 가장 똑똑하고 당찼다. 정권의 넘버1은 아니라도 넘버2 정도는 될 인물이었다. 정덕일은 돈을 많이 벌었지만 이 사업을 영구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보호해줄 정치세력을 찾았던 것 같다. 나는 어느 날 아침 일찍 소공동 롯데호텔 1층 커피숍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

 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정덕진·정덕일 형제의 ‘슬롯머신 사건’이 터졌다. 정덕진과 박철언이 구속되고, 정덕일은 2개의 삐삐를 차고 다니면서 조사를 받았다. 정씨 형제의 돈을 박철언에 건넨 ‘평창동 여인’이 나와 관계 있다는 루머도 돌았다. 나는 전혀 모르는 여인이었다. 이 사건을 담당하던 검사가 지금의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다.

 홍 검사는 내게 참고인 진술을 요구했다. 검사실의 요구대로 ‘정덕일·박철언·신성일의 사실관계’를 A4 네 장에 제출하고 신상옥 감독의 영화 ‘증발’ 촬영 차 미국으로 출국했다. 나는 정덕일에게 40억원을 받았다. 그 돈은 전부 영화 제작에 썼다. 내가 무탈했던 이유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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