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석유 단속왕’ 이종진 경위가 말하는 ‘유사석유 제조·유통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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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한 달 전 수원과 화성의 주유소에서 연이어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유사석유 유증기로 인한 것이었다. 수원에서는 4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주유소를 이용하는 운전자들로선 진짜 석유가 맞는지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사석유 단속왕’으로 불리는 경기 일산경찰서 지능2팀장 이종진(42) 경위의 육성을 통해 유사석유의 제조·유통 실태를 들여다봤다.

 “아직도 석유냄새가 온몸에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종진 경위는 지난 5월 경기도 시흥에 있는 유사석유 저장소를 적발하기 위해 유조차의 2.5t 기름통 속에 4시간 동안 잠복해 있었다. 다른 팀원이 주유소 주인인 것처럼 위장해 유조차를 몰고 저장소로 향했다. 낡은 공장을 개조한 유류저장소에 다다르자 이 경위는 기름통에서 튀어나와 제조업자를 검거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낌새가 있으면 도망가 버리기 때문에 그 방법을 택했다”고 했다.

이종진 경위

 이 경위는 지난 3월 초부터 6월 말까지 실시된 ‘유사석유 특별단속기간’에 전국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전국을 누비며 유사석유 판매 주유소 4곳, 유류저장소 3곳, 제조공장 9곳을 단속하고 길거리 판매업자 10명 등 49명을 검거했다. 경찰청은 이 경위를 1계급 특진시킬 예정이다.

 넉 달간의 단속 기간은 휴일도 없는 나날이었다. 단속이 뜸한 공휴일을 틈타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이었다. 충남 금산의 제조공장을 단속할 때는 일주일 동안 오후 5시부터 오전 2시까지 공장 뒷산에 숨어 유조차가 드나드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이 경위는 “이들은 점조직으로 활동한다”며 “미행이 따라붙을 것을 우려해 운반 차량에 보디가드를 붙일 정도로 치밀했다”고 했다. 제조·유통업자들과 ‘접선’하기 위해 관련 은어도 공부해야 했다. 이들은 유사석유를 ‘물’, 유사석유를 만들고 유통시키는 경로를 ‘물줄기’, 솔벤트 등 첨가물을 ‘여물’, 첨가물 취급소를 ‘여물취급소’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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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류저장소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는 “탱크로리 운반 차량을 미행해도 신호 위반 때문에 고속 주행과 서행을 반복해야 한다”고 했다. ‘차치기’ 방식에 허탕을 치기도 했다. 석유통이 비어있는 차량을 특정 장소에 갖다 놓으면 운반책이 이 차량을 가져가 유사석유를 채운 뒤 다시 약속장소에 차량을 주차시키는 것이다. 운반책이 잡혀도 제조책은 걸리지 않도록 하는 ‘꼬리 자르기’인 셈이다. 이 경위는 유사석유에 대해 집중 단속이 이뤄지면서 잠시 고개를 숙였지만 완벽한 근절은 쉽지 않다고 했다.

 “수원·화성 폭발 사고도 비밀탱크를 감추기 위해 유증기를 뺄 파이프를 설치하지 않아서 일어난 것입니다. 뻔한 위험도 보이지 않는 거죠. 원유에 붙는 세금 차익까지 포함해 L당 800원 이상 이익을 남길 수 있거든요.”

정원엽 기자

◆유사석유=경유와 휘발유에 페인트 희석제로 쓰이는 메틸알코올·솔벤트·톨루엔 등 석유화학제품이나 신나 등 용제(溶劑·어떤 물질을 녹여 용액으로 만드는 액체)를 일정 비율로 혼합해 만든 가짜 석유. 정상석유보다 가격이 싸지만 인화점이 낮고 폭발성이 강해 위험하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 따르면 유사석유를 제조하거나 판매한 사람은 물론 이를 사용하는 사람도 처벌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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