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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없는 '구전 성서' 집대성

중앙일보

입력

#1 삶, 원형, 그리고 질문들

아담과 이브를 악의 길로 꼬여낸 뱀은 '평생 여인의 발 아래 땅바닥을 기게 되리라'는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뒤 어디로 갔는가? 에덴 이후에도 사탄의 활동은 끊임 없이 나오지만 특별히 이브와 아담을 꼬여냈던 뱀의 활동은 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가?

성서의 저자들은 뱀이라는 캐릭터를 애써서 만들어냈고, 그 역할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수행해 낸 캐릭터 하나를 그렇게 쉽게 버려야 했던가?

카인은 왜 아벨을 죽여야 했지? 자신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들의 무심함이 하나 뿐인 형제에게도 낫을 들이대게 만들 만큼 참을 수 없는 문제였나? 인류 최초의 살인은 절대선인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것일까?

그리고 길 떠난 카인은 과연 누구를 만나서 혼인을 하고 자손을 퍼뜨리게 된 걸까? 하느님이 창조한 사람은 아담과 이브 뿐이고 그 자손은 카인과 아벨 뿐이었는데, 카인은 누구와 혼인했단 말인가?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는 자신의 죄과를 어떻게 참회하고, 아들을 잃은 에미 애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인류 최초의 부부인 그들은 서로를 정말 사랑했을까?

에덴에서 쫓겨날 빌미를 만든 이브를 지아비로서 아담은 정말 용서할 수 있었을까? '나 였다면?'이라는 야릇한 상상과 함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2 시인과 설화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생애〉(이동진 편역, 해누리 간)

〈'나그함마디'와 '쿰란' 동굴에서 2천만년만에 발굴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은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 자손에 대한 유태인의 전설을 정리했다.

편집과 번역을 맡은 전직 외교관이자 시인인 이동진 님은 "오래 전부터 아담과 이브의 생애에 관한 내용들도 분명히 유태인들 사이에 구전된 설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런 설화가 있다면 매우 흥미있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침내 그 믿음은 사실로 밝혀졌다"면서 이 책을 편역하게 된 계기를 서문에서 밝혔다.

"아마존 웹 서점에도 없는 세계 최초의 단행본"이라는 표지 귀퉁이의 '상업적' 문구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꽤 고급스러운 장정, 성화(聖畵)를 본문 부분 부분에 적당히 배치하여 읽는 이의 피로를 배려한 본문 편집 등 매우 신경 써서 내놓은 책이란 이미지가 고맙게 생각된다. 마치 성서의 배열처럼 장과 절을 나누어 편집된 이 책은 아담과 이브에 관해 성서에서 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주제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편집, 흥미롭게 읽을 만 하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신앙을 가지지 않은 독자라 할지라도 사람이 만들어낸 인류의 원형 가운데 하나인 부부라는 의미에서 반갑게 읽힐 수 있는 주제다. 마치 단군 종교를 믿지 않는 독자들이라 해서 단군 이야기를 배척하지 않는 것과 같다.

#3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다녀온 박영대(합정동 소재 사단법인 우리신학연구소 사목자료정보센터 실장, 나이 마흔)

- 여행은 괜찮았어? 10주년이라고 여행까지 다녀오고 꽤 근사한데.
"오랜만에 둘이 시간 좀 가졌지. 애들한테도 이해를 구하고 훌쩍 다녀왔어. 하룻밤이었지만, 그럴 듯 했지, 뭐."

- 에덴에서 쫓겨 나온 인류 최초의 부부인 아담과 이브의 여행은 어땠을까?
"흐흐. 그것도 여행은 여행이구나."

- 전에 나는 〈쿰란〉(문학동네)이라는 소설을 본 적이 있어. 나는 쿰란이라는 동굴에 대해서 그 소설에서 처음 알았어. 그 안에 성서와 관련이 있는 비밀스런 기록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런데 〈아담과 이브의 생애〉라는 책이 바로 그 쿰란 동굴에서 발굴한 문헌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라 하니 흥미가 생기더라. 그런 고대 문헌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 거야?

"성서를 이야기하는 데에 참 필요한 부분이야. 성서가 쓰일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아는 건 성서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일이거든. 성서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게 많아. 이를테면 모세의 율법을 이야기할 때, 당시 함께 쓰이던 함무라비 법전과 비교해 보면 율법의 의미를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거란 말야.

그것처럼 성서와 관련된 고대 문헌들은 당시 사회적 배경과 분위기를 알게 하는 근거가 돼. 또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어떤 것이 있고, 그것들은 왜 성서에 기록되지 않았는지를 알게 하는 열쇠가 된다는 거야.

- 예를 들어 춘향전과 같은 우리 판소리에는 경판본 완판본 같은 여러 판본이 있잖아. 쿰란 동굴의 문헌들도 어쩌면 성서의 다른 판본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도 드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러나 구약 성서 안에 기록으로 남겨진 이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구전돼 온 이야기들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거든. 성서의 저자들이 성서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버려진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야. 그게 이 책을 통해 소개됐다고 볼 수 있지.

사실 모든 글쓰기는 창작이라고는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 혹은 세상에 널려 있는 것을 자신의 생각에 따라 편집하는 거 아니겠어? 성서의 글쓰기도 마찬가지야. 당시에 이야기가 고작 그만큼 밖에 없었겠냐? 더 많을 게 빤하잖아. 많은 이야기 중에서 그 저자는 왜 하필이면 이 이야기를 선택했을까 하는 질문이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거야."

- 이 책을 보면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가 나오잖아. 우리가 알고 있는 카인의 살인 동기는 솔직히 그리 납득이 가지 않아. 신부나 목사님들은 그저 믿기만 하라고 하지만, 그게 우리처럼 따지기 좋아하는 먹물들한테 먹히기나 할 이야기니? 여기서는 하나 뿐인 누이동생에 대한 질투심으로 카인이 아벨을 죽였다고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하잖아. 그런데 카인과 아벨에게 누이동생이 있기는 했어?

"그 정도가 아니잖아. 이 책에 따르면 카인과 아벨이 쌍둥이로 태어나고 둘 다 딸이었다고 하는 부분도 있단 말야. 그런데 성서에는 그런 이야기가 안 나와. 내 이야기는 바로 그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거야. 왜 카인과 아벨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들은 채택되지 않고 버려졌던 것일까? 그걸 알아야 한다는 거지.

너도 이야기했지만 하느님은 아담과 이브 딱 둘을 창조했는데, 그 자손으로는 카인 하나 남게 되지. 그럼 카인은 누구와 결혼해서 자손을 퍼뜨리겠어? 모순이잖아. 이 책에서처럼 누이동생과 혼인해서 자손을 퍼뜨렸다면 아주 확실해지지.

헌데 당시 근친 상간이 금지된 상태였다면 편집자는 당연히 그 이야기를 빼겠지. 그러다 보니, 이방 사람과 결혼을 한다든가 하는 빈 틈이 생기는 거지. 이 책과 같은 류의 고대문헌들이 바로 그런 빈틈을 메워 줄 수 있는 자료가 되는 거야."

- 난 이런 생각도 해 본 적이 있어. 카인이 결혼한 건 사람으로 둔갑한 뱀 아닐까 하는 생각, 아담과 이브를 꼬인 뱀 말야. 즉 카인의 마누라는 사탄이라는 거지. 그러다 보니 우리는 다 친가 쪽으로는 카인의 자손이고, 외가 쪽으로는 사탄의 자손이 되는 거야.
"흐흐. 어릴 때 해본 생각이니?"

-아냐. 난 그런 생각 많이 해. 이렇게 성서의 이야기를 제 마음대로 상상하는 게 불경죄에 속하는 거니? 여기 이 책은 더 하잖아.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아예 성서를 부정할 수도 있는 새로운 판본을 들이대고 있잖아. 하긴 불경죄가 여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겠지.

〈내가 신이다〉(문학동네)라는 책도 있어. 그 소설은 신이 곧 작중 화자가 돼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거야. 보수 신학자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불경한 일이야?

"불경죄인지 아닌지는 유보하고 이 책의 편역자는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 너희들이 애지중지하는 성서가 있는데, 이렇게 많은 이야기 중에 그건 그 중 한 가지에 불과할 뿐이야. 그 한 가지 성서 안에 모든 진리가 다 담겨,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지만, 어쩌면 그건 장님이 코끼리 주무르는 짓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마치 맹신적인 신앙인들에게 타이르는 듯 한다는 거야.

- 이 책, 재미는 있었어?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는 무척 재미없는 책인 것 같고, 그래도 신앙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읽을 만한 책이 된다고 생각해. 이를테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물어볼 거야. 하느님은 완전하시다는데 왜 하느님의 모습을 본 뜬 우리는 아프기도 하고, 죽기도 해야 하는 거지요? 하고 말야. 그 질문에 대답이 되풀이 되면서 이런 책이 만들어진 거란 생각이 들어."

- 내가 읽기에는 애초에 생각만큼 재미 있는 건 아니던데.
"나도 그랬어. 교훈적인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그런 것 아니겠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전설이나 동화같은 옛날 이야기도 권선징악만 강조하니, 지겨워 지는 것과 마찬가지 아냐? 어쨌든 이 책은 잘 안 팔리겠더라. 이런 책 요즘도 읽는 사람 있을까?"

- 중간 중간 삽입된 그림은 어때?
"라틴어로 해설돼 있어서 잘 모르겠더라. 그런 것도 좀 세련되게 설명을 붙여주면 좀 좋아? 해누리라는 출판사는 아무래도 출판 경력이 짧은 회사 같아."

- 번역은 어땠어?
"이동진씨 번역은 좋더라. 신학 전공자도 아니면서 자기 나름의 종교관과 외국어 실력이 충분하니까 이런 괜찮은 번역이 나오는 거야. 이윤기 선생의 〈장미의 이름〉도 괜찮은 번역이라지만, 〈장미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동진 선생의 글도 참 좋다구."

#4 조인스닷컴 사무실

오전 시간은 대통령 김대중 님의 남북 정상회담 중계방송 화면에 매달리는 친구들이 많았다. 남쪽 정상을 환호하는 북쪽 시민을 보던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김정일이 우리 나라에 와도 저렇게 좋아할까?" 곁에 있던 한 친구, "우린 그럴 것 같지 않아. 무관심하지 않겠어?"라고 반문했다.

남과 북으로 갈려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많은 기록들을 잃었고, 또 많은 기록들은 원래의 이야기에 다른 색깔을 입혀야 겨우 햇빛을 볼 수 있었다.

오늘 저 모니터 안에서 벅찬 웃음을 짓고 있는 김대중 님 역시 감옥에서 바깥 세상으로 내보낼 편지를 쓰며, 세상의 규율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숨겨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바꾸어 써야 했을까? 성서의 저자들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의미를 남기는 것은 우리 삶의 한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이라는 틀을 벗어나 한 사회의 관습과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신화로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살아 남는다. 아담, 이브. 그건 남자, 여자의 또 하나의 이름에 불과하다. 그걸 〈아담과 이브의 생애〉가 다시 확인하게 해 준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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