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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 재개발 사업’ 현황과 발전방안 토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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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지역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정비사업은 무려 70곳에 이른다. 하지만 조합이 설립돼 사업시행 인가를 받은 곳은 4곳에 불과하다. 사진은 주택재개발이 추진 중인 원성3구역. [조영회 기자]

원도심에 추진 중인 재개발·재건축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해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아파트 위주의 개발 보다 동네 특색에 맞는 기능을 도입하는 도시재생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천안아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천안아산경실련)이 20일 천안시 두정도서관에서 천안 지역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지역 주민이 직접 토론자로 나서 사례(원성3구역, 대흥4구역)를 발표하고 전문가와 함께 원도심 발전 방안을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원성3지역 박노현씨가 도시재생 방식의 개발을 제안하고 있는 모습. [사진=천안아산경실련 제공]

“원성3구역, 주택 단지 특성 살린 도시재생 적합”

천안 지역은 1980년 천안역과 남산공원을 중심으로 사직동 남산·중앙시장, 대흥동 명동거리, 공설·자유시장 등으로 이어지는 상권이 형성됐다.

 특히 원성3구역은 당시 천안에서 최초로 개발계획에 의해 고시된 지역이다. 북쪽으로 오룡웰빙파크(전 오룡경기장), 동쪽으로 천안대로(1번 국도)와 태조산, 남쪽으로는 원성천이 흐르는 요충지다.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빌라, 연립, 상가 등 424가구가 있다.

 천안시는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지난 3월 이곳을 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원성동 445-19번지 일원 6만 4111㎡는 재개발사업을 통해 주거용지 5만 1471㎡(80.3%)에 아파트 13개동 983세대가 신축되고, 도로 7545㎡(11.8%), 어린이공원 2253㎡(3.5%), 공공용지 1519㎡(2.4%), 완충녹지 1323㎡(2.0%)가 조성될 예정이다.

 30년째 이 동네에서 살고 있는 박노현(70)씨. 퇴직 후 특별한 수익 없이 연금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집이 유일한 보금자리이고 동네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 없다. 처음엔 재개발이 추진되면 지역이 발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동의서에 도장을 찍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굳이 집을 허물고 아파트 숲으로 동네를 꾸미는 것만이 동네가 발전하고 주민에게 이득이 될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현재도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씨는 “원성3구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도로가 잘 정비돼 있어 아파트를 짓지 않고도 기존에 잘 갖춰진 인프라를 극대화시켜 원도심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재개발이 아닌 기존 지역을 보전하면서 전통과 현재를 아우르는 도시경관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안아산경실련은 원성3구역 등 도시계획을 통해 도로시설이 비교적 잘 정비돼 있고 저층의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은 아파트를 짓는 방식 보다 동네 특징을 살려 지역을 재생하는 개발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정병인 사무국장은 “천안은 신도심 개발사업이 많고 이로 인한 대규모 아파트 공급물량이 적체돼 있는 상황”이라며 “원성3지역도 마찬가지로 전면 철거식 재개발을 하면 장기간 정착해 살고 있는 주민들을 내몰고 스스로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국장은 이어 “철거식 재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것이 아니라 잘 정비돼 있는 도로 등 기반시설과 단독주택 단지의 특성을 살릴 필요가 있다”면서 “천안시가 도시재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공영주차장, 마을도서관, 녹지공원 등 공공시설을 확충해주고 주민과 함께 동네를 개발하는 방식의 도시재생 사업을 한다면 원도심을 활성화 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자체가 적극 개입해 투명한 사업 진행해야”

토론자들은 재개발·재건축 등 원도심 개발 과정에서 불거지는 불·탈법을 막고 투명하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중앙경실련 재개발신고센터가 재개발 사업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 불공정 사례를 분석한 결과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자료에 따르면 전반적인 사업진행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었다. 또 조합설립동의와 계획 확정, 업체선정 등을 위해서는 주민결의에 앞서 객관적인 자료가 제공된 후 주민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지만 주민부담 내역이나 비용산출 세부내역 등이 빠져있어 이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각종 소송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주민들의 의사결정 과정인 총회도 서면결의를 통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의사결정과정에서 일부 조합임원 등 소수에게 권한이 집중돼 업체와의 결탁으로 비리와 부패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주민의사 왜곡과 조합운영의 비민주성이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조합설립 이후 공개경쟁으로 시공사를 선정해야 하지만 조합이 전문성이 부족한 데다 사업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시공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결국 조합은 추진위 단계부터 형식적인 입찰과정을 거쳐 시공사들과 가계약을 해 초기비용을 조달하고 조합 설립 이후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실정이다. 토론 참석자로 나선 주민들도 사업 추진에 있어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들의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경실련은 이 같은 문제점들로 인해 재개발사업이 주거환경개선을 위함이 아니라 시공사의 수익성을 위한 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공사비의 대폭인상,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불투명한 사업비 책정과 집행, 조합임원과 시공사의 결탁, 불공정한 계약으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자체는 중장기적인 도시계획에 따라 정비구역을 지정하고 각종 인허가를 내주고 있음에도 책임을 지지 않고, 방치하면서 사업이 비정상적인 구조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경제정책팀 김한기 국장은 “이런 문제점들을 볼 때 현재의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전면철거방식보다는 사람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개량재개발 및 수복재개발 방식으로 원도심 개발이 바뀌어야 한다”며 “도시재개발사업의 공공성과 투명성으로 회복하고 주민 피해 예방과 권익보호를 위해서는 지자체가 재개발사업에 책임있게 참여하는 공공관리제도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이를 추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사업추진 시에 발생할 제반사항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공적 기구로 도시재생관리단을 설치하고 ▶지자체가 도시환경개선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고 사업초기비용을 선투자해 사업추진 부담을 덜고 부패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하고 ▶지차제가 추진위원회와 조합대표 선출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정비사업체 및 시공사 선정에 공공이 개입해 철저한 경쟁 원칙하에 투명하게 선정되도록 지도 관리하고 ▶부정이 발견됐을 때는 사업권을 취소하는 등 역할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제안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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