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가모브의 〈내 인생의 단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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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신념'임을 가모브의 삶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구(舊)소련에서 태어난 그는 파동역학을 버리고 오로지 양자역학만을 말하고 연구해야 했고, 또한 유전학을 통해 설명하기보다 환경의 영향에 근거해 설명해야 했다.

자식이 아버지를 닮지 않고 우유배달부를 더 닮은 사실을, 아이가 아버지보다 우유배달부를 더 자주 보고 자라기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면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학문을 연구하는 그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국마저 버렸다. 학문과 인생의 자유를 위해, 나아가 그의 신념을 위해 늘 소망하던 자유 국가로 건너갔다.

가모브는 1904년에 구소련의 오데사라는 곳에서 태어났으며, 부모가 모두 교사였다. 하지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레닌그라드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대대로 물려받은 소중한 은제식기류를 과감히 처분했다.

그는 과연 아버지의 판단대로 물리학에 몰두했고 재능이 있었으며,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팽창우주론이 우주 탄생에 대한 근접 이론으로 부상하고는 있었으나 우주의 기원과 나이에 대한 논의가 불투명하던 1940년대, 그는 '대폭발 이론big bang theory'을 주장한 〈화학원소의 기원〉이라는 논문을 통해 해답을 제시했다.

그리고 나중에 펜지아스와 윌슨이 '우주선(宇宙線)'을 관측해 '우주 배경복사'를 발견해냄으로써 그가 주장한 우주팽창설이 정설로 자리잡혔다. 만약 그가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펜지아스, 윌슨과 함께 1978년에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는 차치하고, 이 책은 가모브의 자서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가 글 쓰기도 좋고 읽는 사람도 재미있을 만한 인생 이야기를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 편하게 쓴 자전적 에세이다.

물론 읽는이가 어려워할 만한 내용은 거의 없으며 다만 아직도 미국의 군사기밀로 남아 있는 일부 이야기가 빠져서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그가 일생 동안 모으고 정리한 사진들과 그림들이 곳곳에 실려 있어 책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번역 원고를 처음 읽던 날, 연신 웃음을 토해냈다. 일전에 작업한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와는 또 다른 천재의 기발함과 엉뚱함이 숨어 있다.

넥타이가 없어 중요한 만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꿈속에서라도 만찬을 즐기기 위해 베개 밑에 숟가락을 넣어두고 자기도 했고, 단지 손금의 유전성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부인과 결혼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부인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산부인과로 달려가서는 제일 먼저 아이의 손금부터 확인했다.

이 책을 진행하면서 벌써 대여섯 번이나 다시 읽었지만 아직도 질리지 않고 읽을 때마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독특한 인생과 사고 방식뿐 아니라 탁월한 글재주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는 타고난 재치와 글솜씨를 바탕으로 어려운 물리학에 관한 쉽고 훌륭한 해설서를 많이 저술하여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하였고, 그 공로로 유네스코로부터 칼링거 상을 수상했다.

권기호(사이언스북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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