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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력 상실한 뒤 쓴 ‘나의 생애에서’ 삶의 속도 늦추고 상념에 빠지게 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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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호 27면

체코에 두 번 가봤다. 참 아름답고 멋진 나라다. 갈 때마다 놀란 것이 작곡가 스메타나에 대한 범국민적 사랑과 자부심이었다. 숱한 기념관은 말할 것도 없고 주요 행사의 개막은 ‘나의 조국’ 같은 스메타나(사진) 곡으로 출발한다. 체코는 우리에게 더 익숙한 드보르자크에 앞서 그의 선배 스메타나의 나라였다.

詩人의 음악 읽기 스메타나

그런데 탐구심을 갖고 들여다보니 스메타나는 체코 이전에 보헤미아 사람이었다. 백과사전을 펼치면 이렇게 나온다. “체코를 동서로 나누어 동부를 체코 명으로 모라비아라 부르고, 서부를 체히(Cechy)라 부르는데, 이 체히를 영어로 보헤미아, 독일어로 뵈멘(Bhmen)이라 한다.” 그러니까 이제는 둘로 쪼개진 체코슬로바키아는 켈트 계열 부족인 보헤미아 사람과 후대에 이주한 슬라브 계통 사람의 연합체였다는 말이다. 전회에 다룬 같은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는 모라비아 쪽 사람이었다.

우리가 전라도·경상도의 억양을 크게 차이 나는 것으로 느낄 수 있듯이 그들도 아마 그렇겠지. 이 체코 지역은 천년 역사 동안 독일·오스트리아로부터 지배와 복속을 당하기를 거듭해 왔다. 식민통치가 계속되어 최선진국 일본의 2등 국민이 되는 것보다는 가난한 독립국가 세우기를 우리가 소망했듯이 체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스메타나는 그런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자기 조국에서 독립과 자존의 기운이 크게 타오를 무렵, 예술로 시대 상황을 반영한 인물이었다. 사회혁명의 투사가 되어 직접 행동에 앞장섰고 고생도 엄청 했다. 게다가 특별히 보헤미아 고유 문화를 깊이 천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글쎄다. 스메타나가 체코인에게 위대한 존재라는 건 알겠는데 이토록 멀리 있는 코리안에게 무슨 감동을 줄 수 있는 걸까. ‘국민군 행진곡’, ‘프라하 학생군대의 행진곡’ 같이 체코인이라면 눈물이 절로 흐른다는 곡에 나도 공감할 수 있는가.

스메타나 4중주단이 연주한 ‘나의 생애에서’.

약간 무리한 얘기를 해야겠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물어 본다. 그건 선율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인가. 정말 거기까지인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본다. 첫째, 음악은 역사나 현실을 벗어난 초월적 미학의 세계다. 삶을 개입시키는 것은 음악을 오염시키는 일이다. 둘째, 아니다. 음악은 인간의 삶을 반영하는 다른 언어다. 인생과 역사에 담긴 눈물과 피와 땀을 느껴야 진정한 예술적 감흥에 도달할 수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스메타나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6곡으로 이루어진 교향시 ‘나의 조국’, 그중에서도 두 번째 곡 ‘몰다우’(‘블타바’가 그쪽 발음이다)다. 그러나 감상 대상으로 더 꼽히는 작품은 따로 있다. 그가 작곡한 두 개의 현악 4중주 가운데 제1번 ‘나의 생애에서’가 그것이다. 스스로 붙인 제목 그대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 결혼과 사랑, 질병과 고뇌 등이 네 개의 악장에 유려하게 실려간다. 구수한 전개라고 할까, 누구라도 이 곡을 들으면 깊은 상념에 빠져들며 삶의 템포를 늦추고 싶어진다. 특히 작곡 상황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만년에 들어 베토벤처럼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다음에 쓴 곡이기 때문이다. 전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노구의 예술가가 격렬하게 살아온 일평생을 회상하며 한 소절 한 소절 악상을 이어간 장면을 떠올려보자. 명상을 안겨주는 작품이라 해서 느리거나 완만하지 않다. 오히려 무곡의 들썩임이 충만하고 느린 악장 역시도 꽉 찬 듯해서 숨이 벅차게 들린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들을 때 도저히 작곡가의 삶을 떠나서 들을 수 없듯이 ‘나의 생애에서’ 역시 마찬가지 환기력을 안겨준다. 첫사랑이었던 아내 카테리나가 죽었을 때의 심경이 연상되는 부분에서는 멍한 기분을 어쩌지 못한다. (지난날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마음으로 죽여보곤 했었다. 죽으면 얼마나 슬플까 하는 것을 느껴보느라고. 그러다 상상 슬픔에 진짜로 운 적이 있는데 젠장, 그녀는 나를 차버렸다.)

앞서 음악을 수용하는 태도의 차이로 언급한 첫째, 둘째 가운데 내 나름의 답은 이렇다. 삶을 떠난 아름다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는 것. 물론 편견이고 비음악적 태도일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귀가 멀어버린 ‘나의 생애에서’가 열 배의 감흥을 안겨주는 걸 어쩌랴. 더 나아가 보헤미아·모라비아의 지역색과 갈등도, 독일·오스트리아의 압제도 내가 듣는 음악에는 깊이 개입한다. 꼭 고구려·신라·백제만이 우리의 역사여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일까.

내가 만일 교육정책 담당자라면 한국인 정체성의 함양 못지않게 인류 공동체라는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노력할 것이다. 마르크스·트로츠키 할아버지가 실패했던 경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것이 이미 가능한 영역이 예술이고 음악이다. 스메타나의 곡은 더 이상 ‘서양’ 음악이 아니다. 인생의 현악사중주이고 김구·안중근이 떠오르는 ‘나의 조국’이기도 하다.



10월 16∼17일자 ‘레오시 야나체크’ 편에 실린 제목 “‘헝가리 민속’ 통해 음악의 길 개척” 가운데 ‘헝가리 민속’을 ‘모라비아 민속’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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