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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죽음체험’ 발길 잇는 닭박물관 … 동두천으로 이삿짐 싸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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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경희 기자

서울 가회동 닭문화관 특별전 ‘공공미술-나의 장례식’이 중앙일보에 보도(‘왕따시킨 것, 도둑질한 것 후회돼요’, 18일자 20면·사진)되면서 관람객이 밀려들고 있다. 전시는 초등 4학년~중학 2학년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성찰한 9주간의 과정을 담아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식을 배우거나 유물을 만들어보는 데 그치는 여느 박물관 교육을 넘어서 아이들의 마음을 키웠다. 아이들은 삶의 귀함을 깨닫고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했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아이도, 왕따 경험이 있던 아이도 치유됐다. 그런 전시를 보며 어른들도 위로 받는 모양이다. 박물관은 다음 달 15일까지 전시를 보름간 연장하기로 했다.

 작은 박물관이 300만원 남짓 적은 돈으로 해 낸 일이라 더 값지다. 이건식 관장이 친구에게 빌린 캠코더, 학예사가 자비 털어 산 녹음기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는 식이었다. 학예사 유성이씨는 막차 타고 퇴근해 첫차로 출근했다. 돈 대신 몸으로 때우며 아이들 안의 예술성과 철학을 끌어냈다. 그는 “미술치료·대안교육으로 돈을 많이 번 적도 있었지만 진짜 교육을 할 수 있는 지금이 더욱 보람되다”며 행복해했다.

 전시를 본 정종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예산 탓, 인력 탓만 하는 국립박물관들이 배워야 한다. 이런 전시는 없기도 하지만, 만약 국립에서 했다면 비용이 10배는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부터 국립박물관이 무료화되면서 사립박물관은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처지에 놓였다. 국립도 공짜인데 작은 박물관이 왜 돈을 받느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탓이다. 실제로 전시를 취재하던 당일, 한 관람객이 관람료가 3000원이라는 말에 발걸음을 돌렸다.

닭문화관은 김초강 전 이화여대 교수의 수집품으로 2006년 문을 열었으나 운영난을 겪다 지난해 ㈜마니커에 인수됐다. 열성적인 학예사 덕에 동네 아이들 사랑방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임대료 부담으로 조만간 동두천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기댈 언덕 하나를 잃게 된다. 그것이 남긴 작은 기적만은 많은 이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02-763-9995.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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