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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종의 미술 투자] 사진작가 김아타의 ‘유일한 약점’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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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는 위대한 작가다. 2006년 뉴욕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의 개인전으로 당당히 세계 미술계의 심장부인 뉴욕에 입성했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대서특필하며 김아타를 대대적으로 환대했다. 척박한 한국 미술계에서 터무니없는 몰이해와 반대에 맞서며 김아타는 그저 자기의 길을 갔다. 그가 믿은 것은 자신의 위대함뿐이었다. 뉴욕은 학연·지연과 무관하게 오로지 작품으로만 승부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미 그는 2002년에는 영국의 파이든 출판사가 뽑은 ‘세계 100대 사진가’에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한국 대표작가 최초로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제노비오’ 전시장에서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을 열었다. 또 그의 작품은 미국의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정부의 도움도, 한국 미술계의 어떤 지원도 없이 김아타 혼자서 묵묵히 이룬 업적이었다. 그런데 사진작가로서의 명성이 최고조에 오르는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카메라를 버렸다. 세계 주요 지역에 설치한 캔버스에 자연의 움직임과 시간의 흔적을 담는 ‘드로잉 오브 네이처(Drawing of Nature)’ 시리즈를 시작했다. 영국 조각가 아니시 카푸어는 벽을 향해 물감 대포를 쏜 게 전부지만, 김아타는 이 작품을 위해 인마살상용 대포가 터지는 곳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하고 대포를 평화로 품었다. 김아타는 늘 우리의 이해와 기대를 앞서갔다.

 한국 미술의 고질병 중 하나는 해외에서 떠야 비로소 알아주는 뒷북치기다. 안목이 부족하고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부족한 탓이다. 자국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중국 컬렉터들의 열성과 비교된다. 한국 컬렉터가 잊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한국 작가가 유명해지기 전에 살 수 있는 첫 번째 행운은 한국 컬렉터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재능 있는 작가들은 우리의 행운이다. 그러나 행운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견의 노력을 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김아타가 뉴욕으로 가기 전과 가고 나서의 가격을 비교해 보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2000년대 초 1000만원가량 했던 그의 작품 가격이 지금은 억대에 이른다.

김아타의 `온에어 프로젝트 110-7`

김아타의 도록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가 생을 걸고 우리에게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방대하다. ‘온에어(ON-AIR) 프로젝트’의 8시간 노출 작품과 인달라 시리즈에는 전 세계 주요 지역이 망라돼 있다. 한 인간이 어떻게 이런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지 경외감이 든다. 뉴요커들을 통곡하게 만들었다는 뉴욕 시리즈의 화면을 지배하는 색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싸한 ‘블루’다. 그의 메인 테마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결국 사라진다’다. 블루는 모든 것이 소멸해가는 흔적의 색이다. 그는 감히 그의 작품에서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신의 장소와 인간의 장소, 신과 인간의 소통 언어를 담아놓고 있다. 김아타를 통해 사진은 단순히 보는 사진에서 사유하게 하는 사진으로 변화했다. 그의 유장한 작품에는 장엄한 정선 아리랑의 가락이 묻어나고 거제와 통영의 깊은 바다 빛을 닮았다. 그는 이미 위대한 작가이고, 우리는 소멸되어 가는 우리의 존재만 부여잡고 있어 그를 못 볼 뿐이다. 한국 컬렉터들, 한국 사람들만이 현재의 김아타가 가진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다. 그의 유일한 약점은 대한민국 사람이다.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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