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 안 지켜도 된다” → “정치인은 법 테두리 지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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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왼쪽)가 13일 새벽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운데)와 함께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무소속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쓴 『악법은 법이 아니다』(사진)가 나온 2000년 3월은 16대 총선 직전이었다. 당시 박 후보는 총선시민연대를 조직해 ‘낙천·낙선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낙천·낙선운동의 도덕적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법철학·통일관 등이 드러났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는 지금 절판된 상태다. 박 후보가 이 저서에 담은 내용은 현재 그의 발언이나 행보와 상충돼 보이는 부분이 많다. ‘돈’에 대한 발언(“돈엔 의지가 있다”와 “나눔을 위해 부자들에게 후원금을 받는 게 뭐가 나쁘냐”)이나 정치참여에 대한 입장 등이 그렇다. 서울시장이 됐을 때 시민들에게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할 것인지, 국가보안법에 대한 입장이 그대로인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중앙일보는 12일 박 후보 캠프에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물었다. 다음은 책의 주요 내용과 박 후보 측의 해명.

 ◆“국민적 상식 부합 못하는 법 고쳐야”=그는 ‘최후의 성역’이란 글에서 “명동성당은 지난 1970년대 이후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피난처로서 권력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곳이 됐다. 이것은 ‘악법도 법’이라는 실정법의 요구에 대해 ‘악법은 법일 수 없다’는 자연법의 우위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저자 서문엔 “현행 선거법을 위반하고서라도 낙선운동을 벌이려는 우리 입장은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로 재단당하고 있다. 그러나 악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라고 썼다. “헌법과 국민적 상식에 부합하지 못하는 법은 고쳐져야 하며 그 노력은 민주시민의 의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디케에게 물어보라’는 글에서는 “노조의 불법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는 언뜻 보면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노조의 파업과정에서 불법이 있었고 그에 대해 검찰이 바로 수사에 착수해 경찰이 불법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였다고 하자. 그 결과가 어떠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그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 아직 정부는 재벌의 더 큰 불법을 다스리고 있지 못하다. 오늘의 경제위기를 가져온 건 재벌을 포함한 대기업 소유주와 경영자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 캠프 송호창 대변인은 “당연히 (그때와 지금의) 입장이 달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시민운동가는 마틴 루서 킹 목사처럼 인권이나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해서라면 법이 금지하더라도 해야겠지만 사회를 책임지는 정치인은 적법한 테두리에서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악법은 법이 아니라는 주장도 일종의 ‘시민 불복종’을 뜻하는 말로 헌법제도에선 폭넓게 인정하는 가치다. 박 후보의 생각이 달라진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위치에 따라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른 정치 외치지만 국민은 안 믿어”=박 후보는 책속 ‘정치러시 뒤에 남는 것’이란 글에서 정치참여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보였다. “정당으로 향하는 대열에 공직자, 변호사, 의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예인들도 수없이 합류했다. ‘정치 안 해?’ ‘어느 정당 가?’가 인사가 됐다. 이러다가는 전문분야를 제대로 지키고 있을 사람들이 남아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과연 이 많은 사람들이 정치로 몰려들어 그토록 욕을 들어먹던 정치가 올바로 설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저마다 바른 정치를 해보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곧이듣지 않는다. 정치러시에 합류한 사람들이 부패한 정치권의 정화와 개혁을 이루어내리라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박 후보의 과거 주장에 대해 송 대변인은 “박 후보는 아직도 그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시민운동을 통한 사회적 기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정치에서 해법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법은 북한 합법성 박탈”=‘죽은 사람에 대한 산 사람의 논쟁’에선 그의 통일관이 읽혀진다. 그는 “긴 세월을 보내고 나면 오늘의 남북 분단시대는 민족의 진취와 열정을 소진한 불행한 한 시기일 뿐이다. 한국전쟁과 반세기에 걸쳐 유린당한 민족적 자존은 이제 더 이상 손상될 수 없다. 분단시대에는 그 시대에 걸맞은 인물이 영웅이 되고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통일이 되면 국군이 따로 있고 인민군이 따로 있겠는가. 서울의 ‘국립묘지’에 누운 국군과 평양의 ‘열사릉’에 누운 인민군이 다함께 일어나 춤을 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악법,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글에서 국가보안법을 맹비난했다. “악법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은 일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의 기본권 침해의 여지를 수없이 남기고 있다. 93년 유엔인권이사회도 한국 정부에 이 법은 반민주적인 것이므로 개폐돼야 한다는 공식적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 것이다.

 또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는 용기’에선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의 영토조항이나 국가보안법은 북한 정권의 합법성을 박탈하고 있다. 헌법의 이 조항과 국가보안법이 존속하는 한 우리는 반국가단체의 ‘수괴’와 회담하고 그 구성원과 교류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 주석과 북한 정권의 과오를 분명히 하는 일과 한반도에 한 정부의 실체로서 존재하며 통일 파트너로서 북한 정권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과는 분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송 대변인은 “색깔론을 유발할 수 있는 질문”이라며 답변에 난색을 표했다. 그는 관훈토론회에서 박 후보가 “나는 안보관이 투철한 사람이다. 80년대 인권변호사 시절과는 다르다”며 “평화 구축을 위해 북한은 잘 관리해야 할 상대”라고 말한 것을 환기시켰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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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법무법인산하 고문변호사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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