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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북스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1.2〉출간

중앙일보

입력

"아, 리처드 파인만! 그 사람 '골 때리게' 웃기는 사람이잖아. "

물리학, 혹은 그 언저리를 전공한 사람이나 최근 10여 년 사이에 미국에서 살았던 사람에게 물어보면 대개 비슷한 대답이 튀어나온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과학자이자 코넬대학과 칼텍(캘리포니아 공대)교수를 지낸 인물을 권위의 대상이 아니라 조크의 소재로 먼저 기억한다.

왜일까. 한국 독자에게는 낯설지만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은 미국 내에서 아인슈타인에 버금갈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파인만이 한평생 벌인 온갖 기행을 톡톡 튀는 문체로 담은 책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2〉(김희봉 옮김.사이언스북스)덕분이다.

미국에서 이 책이 나온 것은 10여 년 전. 그러나 아직까지도 꾸준히 읽힐 만큼 인기가 높다.

파인만의 기상천외한 장난기가 세월을 건너 뛰며 독자들을 웃기고 있는 것이다.

파인만과 함께 드럼을 치던 친구 랄프 레이튼이 그가 7년 동안 말한 것을 에피소드별로 정리한 이 책엔 명성 뒤에 숨겨진 물리학자의 진솔한 인생이야기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과학자.예술가 등 일반인과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기행은 대개 상상할 수 있는 범주 안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과학자가 너무 연구를 열심히 해서 다른 것에는 엉망이었다든가 예술가가 너무 술을 좋아해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는 식의 기행은 그래서 일종의 '그들의 정해진 길' 같은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파인만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물리학으로 노벨상까지 탔지만 "물리학을 가지고 놀았다" 고 말한다.

물리학 이외의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평생을 바친 그의 연구는 물리학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재미를 위한 것이었다.

금고털이 수준에 이를 정도로 금고열쇠를 따는 데도 능숙해 그가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일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동료 연구원들은 금고의 비밀번호를 바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는 "화가들이란 대책 없는 사람들" 이라면서도 화가 친구에게 그림을 배워 예명으로 그림을 팔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포르투갈어와 일본어를 배울 정도로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남자답게 보일 수 있을까' 를 고민하며 술집에서 주먹질을 해 눈가에 시퍼런 멍이 든 채 수업을 할 정도로 여자를 유혹하기에 골몰한 교수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이야기도 재미있다. MIT 재학시절 사교클럽에 가입해 공부벌레인 급우의 문짝을 훔친 일이나, 말을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철학 교수에 얽힌 이야기도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파인만이 남다른 것은 그의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와 비슷하게 똑똑하고 그에 버금가는 업적을 세운 물리학자가 많을지 몰라도 독특한 사고법을 가진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책 속에는 비범하게 회전하는 그의 머리 덕택에 벌어진 흥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담겨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프린스턴 대학원 시절 철학 세미나에 참석해 '본질적 대상' 에 대해 벌인 토론이다.

전혀 모르는 어려운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자리를 모면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찾아서 읽어봄 직하다.

이밖에도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젊은 시절 학회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타임' 지 기자가 "당신 논문에 관심이 많으니 논문을 보내달라" 고 해 기뻐하면서 주소를 가르쳐줬지만 알고 보니 그 기자가 원했던 사람은 룸메이트. 몇시간 뒤 룸메이트가 이 사실을 전하자 그는 시큰둥하게 "대중에게 알려지는 건 매춘" 이라고 답한다.

그는 당시에 '타임' 에 이름이 실린다는 사실이 단순히 근사하게 보였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훗날 오전 3~4시 경에 노벨 수상자로 선정됐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도 "나는 지금 자고 있으니 아침에 다시 전화하라" 고 할 만큼 인생관이 달라져 있었다.

노벨상 수상 후에 강연마다 사람들이 가득 몰리자 엉뚱한 교수 이름으로 강연 공고를 내 사람이 적게 오도록 유도한다 하는 등 그의 특이함을 드러내는 이야기도 수록돼 있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한 천재의 기이한 일화' 만을 보게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삶을 빌어 세상을 향해 던지는 파인만의 메시지를 우리는 행간을 통해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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