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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거펠트 “나는 본다, 찍는다, 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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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칼 라거펠트의 모토는 ‘보는 것(to see)’이다. 호기심과 열정으로 세상을 읽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를 사진과 패션에 담는다. 사진은 라거펠트가 찍은 잡지 화보 ‘마리아 칼라 보스코노, Interview, 2001’. [대림미술관 제공]

라거펠트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73)-.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다. ‘패션계의 살아있는 신화’다. 그는 항상 눈부신 백발에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다. 손에도 장갑을 끼고 있다. 70대 나이에 패션의 첨단을 이끄는 감각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선글라스로 얼굴을 반쯤 가린 그의 모습처럼 창의성의 비결은 미스터리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번엔 사진이다. 라거펠트의 사진전 ‘Work In Progress’(진행중인 미완성 작품)가 13일부터 내년 3월 18일까지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daelimmuseum.org)에서 열린다. 그가 쉰 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찍어온 사진 중 엄선한 400여 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패션뿐 아니라 출판·단편영화 등 ‘멀티 크리에이터’로 활약하고 있는 라거펠트의 면모를 엿보게 해준다.

 ◆“도전” 49세에 피사체를 주목하다=라거펠트는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로 50여 년,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로 30년 가까이 활동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패션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지만, 아디다스·돔 페리뇽·디올과 같은 브랜드의 사진과 광고 영상을 찍은 직업 사진가로도 유명하다. 87년 샤넬 컬렉션 사진이 맘에 들지 않아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49세였다.

 ◆“관찰” 끊임없이 보고 찍다=사진은 패션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닷가 모래 사장의 발자국, 뉴욕 거리의 낡은 건물의 철제 테라스의 반복되는 패턴도 놓치지 않고 찍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가 특별히 아낀 남성 모델 브래드 크로닉과 밥티스트 지아비코니의 관능적인 누드 사진이다. 라거펠트는 크로닉의 초상 사진도 집요하게 찍었다. 각기 다른 시간, 다른 표정으로 찍은 사진 180여 장이 미술관의 한 벽을 채웠다. 미세한 차이를 포착하는 데 집중한 면모는 편집증으로 느껴질 정도다. 한국 전시를 앞두고 프랑스 자택에서 한 인터뷰에서 라거펠트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다름(차이)’”라고 말했다.

 전시회 준비를 위해 한국을 찾은 독일 출판인이자 전시 기획자인 게르하르트 슈타이들은 “라거펠트가 시도한 다양한 노출과 인화기법이 그의 스타일을 잘 설명해준다. 디지털 기기로 찍어도 인화에서 장인기술과 수작업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고 설명했다.

샤넬의 컬렉션 사진. ‘하이디 마운트, 버몬트, 2009’. [대림미술관 제공]

 ◆“변화” 가장 싫어하는 건 ‘과거’ ‘반복’=라거펠트는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아이팟으로 사진 찍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동전을 넣고 사진 찍는 즉석사진기(‘포토마통’)로 촬영하기에 푹 빠져있다고 한다. 2011년 F/W 컬렉션 사진에도 즉석사진기를 활용했다 ‘왜 포토마통이냐’는 질문에 “새롭고 흥미로우니까”라고 답했다.

 라거펠트는 “패션만 했으면 지겨웠을 것”이라며 “사진은 요즘 내 삶의 일부다. 사진이 삶을 새롭게 보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고 다시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내 삶에 ‘다시’는 없다”고 대답했다. 내게는 오직 지금과 미래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라거펠트의 인터뷰 영상과 그가 직접 제작한 단편영화도 상영된다. 02-720-0667.

이은주 기자

◆칼 라거펠트=1938년 독일 함부르크 출생. 16세 때 국제 의류디자인대회에서 여성코트 부문 1위. 17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피에르 발망 보조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 64년 클로에, 발렌타인에서 디자이너로 활약. 98년 라거펠트 갤러리 설립, 브랜드 칼 라거펠트 론칭. 현재 샤넬과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 2000년 게르하르트 슈타이들과 ‘Edition 7L’라는 이름의 출판사와 서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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