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불어 삶을 노래할 줄 아는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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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잊고 산 지 오래다.

어릴 적, 한강의 도도하고도 푸릇푸릇한 줄기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던 우리 집, 그 건너 허연 바위가 드러난 민둥산에도 봄이면 어김없이 개나리와 진달래가 소복하게 피었었다.

여름이면 수영 잘 하는 오빠들을 따라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정말이지 은빛 모래가 반짝이는 모래 섬에서 졸졸졸 흐르는 냇물과 포롱포롱 꼬리치는 송사리와 놀았었다. 가을이면 뒷산에 듬성듬성한 소나무에서 솔향기 솔솔 풍기는 솔잎을 따다 송편 아래 깔기도 했었다.

겨울이면 또 어떤가. 트럭도 마음놓고 건너 다닐 수 있을 만큼 꽝꽝 언 한강 위에서, 추운 땅에서 자라 스케이트에는 자신이 있으시다던 엄마의 그 날렵한 두 다리가 얼음 위를 윙윙 스치면 나는 부스러져 나온 얼음 조각을 주어 먹곤 했었다.

기억도 까마득한 60년대 일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한강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깎여나간 민둥산에는 알록달록한 2층집, 3층집이 들어섰고, 전망 좋던 우리 집, 그 언덕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입주민을 맞아들일 마지막 채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한강변에는 철로만 남아 옛날을 추억할 수 있을 뿐, 육중한 다리와 가로등만 즐비하다.

한강변의 모습이 변하면서 나 역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 둘 잊어갔다. 이따금 자라나는 내 아이들에게 엄마의 어린 시절을 들려줄 때나 반추하게 되는 기억들. 돌아가신 엄마가 계셨고, 오빠와 언니들이 올망졸망 성장을 다투었던 풍경.

그러다 며칠 전, 내 어린 시절을 다시 만난 듯 가슴 싸하고 돌아가신 엄마를 꿈 속에 뵌 것처럼 눈물겨운 글과 조우하였다. 김 용택 시인의 〈촌아 울지마〉(열림원).

책표지부터 60년대 우리들이 연습장으로 쓰던 누런 갱지를 몇 겹으로 덧붙여 놓은 듯 가칠가칠하고 소박한 감촉, 그 글 속에 이른 봄 싸늘한 바람을 맞아 볼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아이들의 모습은 내 메마른 가슴에 이슬비 같은 촉촉함으로 안겨들었다.

거대하고 멈출 줄 모르는 도시화의 물결에서 밀려나, 그래서 오히려 철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풍요로움 속에서 제 손으로 자기를 챙기는 자율을 배우고, 자연과 더불어 삶을 노래할 줄 아는 동안(童顔)의 선생님 품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아이들, 마치 우주의 이치가 그러하듯 졸업하여 나간 언니 오빠들의 빈 자리를 새록새록 자라나는 1학년이 다시 메워, 아쉬움과 그리움보다 더 크고 넉넉한 것이 사랑임을 깨달아가는 아이들.

비록 손에 쥔 것은 가난과 외로움밖에 없어도 그들의 해맑은 웃음과 또록또록한 눈망울을 가슴 가득한 사랑으로 보살피는 선생님이 있기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강산을 품에 안고 제 주변을 돌아보고 얻은 깨달음과 지혜를 시로 풀어낼 줄 아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읽으며 나는 가슴이 아프고, 눈물도 방울방울 흘린다.

그제 밤, 성적이 뚝 떨어진 아이에게 매질을 한 것도 가슴 아프고, 가기 싫다고 늑장을 부리는 아이를 채근하여 영어 공부방에 가게 한 것도 가슴 아프고, 일 주일 치 일기를 한 데 몰아서 쓰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퍼부은 것도 가슴 아프고, 저녁 먹은 다음에 나가 놀겠다던 아이에게 숙제부터 하라고 닥달질을 한 것도 가슴 아프다.

그리고 그 가슴 아픔은 물질만 풍부해졌을 뿐, 30년 전이나 별 다름없는 척박함 속에서 공부하는 우리네 교육 현장과 무지막지한 속도로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올바른 신조 하나 갖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나를 포함한 어른들에 대한 분개와 반성으로 이어진다.

아직은 내 가슴속에 어릴 적 풍경이 살아 있고, 그래서 마암 분교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도 사랑스러운 것이라면 나부터 자연을 돌아보고, 내 아이들의 자연스런 모습을 새삼 바라볼 여유도 남아 있을 것이다.

아파트를 에워싼 공원 숲 간나무에도 손바닥만한 새 잎이 오종오종 달렸고, 이른 봄에 아이들이 뿌린 나팔꽃 씨도 싹을 틔웠다. 넝쿨 장미도 굵직한 꽃망울을 터뜨렸고, 경비 아저씨가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고추 화분에도 새끼 손톱만한 고추가 매달렸다.

돌아보면 그리 멀리 있는 것도 아닌데, 이번 일요일에는 아이들과 손잡고 겨우내 우리 집 베란다에서 자라며 재롱을 피우다 인근 농가로 장가간 닭들도 보러 가고 훅훅한 퇴비 냄새 풍기는 논둑 길을 걸어 보아야겠다 다짐한다.

그리고 30년쯤 앞서 초등 교육의 미래를 살고 있는 듯한 마암 분교 아이들에게 다가서는 한 걸음을 나도 내디딜 수 있기를 나 자신에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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