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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힐러리의 새 상대는 젊은 야심가

중앙일보

입력

뉴욕은 원래 뉴스가 빨리 퍼지는 곳이지만 이제는 그 속도가 광속 수준이다. 지난주 금요일 낮 12시 15분, 루디 줄리아니(55)
시장은 조지 파타키 뉴욕 주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전립선암 때문에 힐러리 로댐 클린턴을 상대로 한 뉴욕州 상원의원 선거 출마를 포기해야겠다고 말했다.

파타키는 즉시 대리후보 릭 라지오(42)
연방 하원의원에게 전화했다. 라지오는 워싱턴에 있었지만 참모들이 출마 선언문을 작성하는 동안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한편 힐러리와 측근들은 줄리아니가 후보 사퇴를 발표하는 장면을 보려고 TV 앞에 모였다. 그녀는 정치보다 사랑과 생존이 중요하다는 그의 새로운 신조에 감동받은 듯했다. “그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힐러리는 말했다. 그들의 통화는 짧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우호적이었다.

힐러리와 줄리아니의 통화는, 갑자기 박진감이 떨어지긴 했지만 지명도와 중요성에서 대통령 선거 다음가는 이번 뉴욕 상원의원 선거전에서 최후의 조용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힐러리는 美 전역 보수진영엔 혐오의 대상이지만 진보진영에는 우상이다.

그녀가 선거에서 이기면 (그리고 앨 고어 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서 지면)
즉시 민주당 차기 대통령 후보군의 선두주자로 진입할 것이다. 라지오가 이기면 민주당의 상원의원석을 빼앗는 것은 물론 공화당의 스타가 될 수 있다. 라지오는 젊고 TV 선거운동에 능하며 예리할 뿐 아니라 클린턴 부부만큼이나 엄청난 야심가다.

힐러리 사단은 줄리아니의 중도하차에 안도감을 표명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신참 후보에 대해선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공화당 지도층의 일부 인사들조차 암담한 표정이다.

그러나 라지오는 유명할 뿐만 아니라 선거자금도 풍부했던 후보(톰 다우니 前 민주당 하원의원)
를 이긴 전력이 있다. 그의 선거전략은 지극히 단순하다. 뉴욕 본토박이 영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나는 이 선거를 고위직을 향한 발판으로 보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뉴욕에서 태어났다. 이곳에서 낚시와 조개잡이를 하고 어린이 야구단에서 활약했다. 뉴욕 사람과 결혼했고 두 딸도 여기서 태어났다. 나는 내가 누군지 잘 안다. 나는 뉴욕 사람이다.”

맞는 말이다. 롱아일랜드에서 자동차 부품 상점상의 아들로 태어난 라지오는 아버지를 도와 자동차 부품을 정리하며 동네 아마추어 밴드에서 기타를 치다가 바사大에 진학해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의 부친은 서포크 카운티 공화당 지역구 사무실에서 일했다. 라지오는 나중에 지방검사가 됐으며 카운티 의회 의원을 지낸 뒤 연방의회로 진출했다.

라지오는 줄리아니의 사퇴에 대비하고 있었다. 4백만 달러를 모금해 뒀으며 언제든 동원가능한 참모진도 구성해놓고 있었다. 줄리아니의 사퇴 발표 후 몇 시간도 채 안 돼 라지오는 벌써 전용 비행기를 타고 유세에 나섰다.

한편 미치 매코넬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한 워싱턴의 공화당 지도부는 줄리아니의 선거자금 9백만 달러 대부분을 라지오를 위해 쓸 수 있도록 당에 넘기라는 압력을 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공화당이 후보를 바꾼 날 힐러리는 라지오를 무시하고 줄리아니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녀의 측근들은 즉시 이 4선 의원을 악랄한 우익인사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줄리아니는 의원 생활을 한 적이 없어 워싱턴의 공화당 기성 정치인들과 연계시킬 만한 표결기록이 없었다.

1992년 처음 하원에 진출한 라지오의 경우는 그와 다르다. 클린턴의 측근 해럴드 이키스는 뉴욕 포스트紙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라지오는 뉴트 깅그리치(前 하원의장)
와 딕 아미(공화당 하원 원내 총무)
및 다른 공화당 강경파 중진들의 행동대원 노릇을 했다.” 뉴욕州에서는 심지어 공화당원들조차 깅그리치 시절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사실 라지오는 당내 협상에 능숙한 정치인이다. 그는 2인자 자리를 유지하려는 아미의 캠페인을 잘 이끌었다. 그 충성의 대가로 라지오는 2개의 주요 재정위원회(금융위·상공위)
에 소속되는 행운을 잡았다. “라지오는 유연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그의 정신적 스승이자 공화당 전국위원회 前 의장인 리치 본드는 말했다.

그 ‘유연함’은 이념적 측면에도 적용된다. 라지오는 교육부를 없애기 위한 깅그리치의 ‘미국과의 계약’과 학교 바우처 프로그램에 찬성표를 던졌고, 공화당의 8천억 달러 세금 삭감안을 지지했다. 반면 낙태는 찬성하며 권총과 살상용 무기 규제를 지지한다.

줄리아니는 지난주 금요일 정치적 술수의 세계에 흥미를 잃었음을 분명히 했다. 뉴욕 양키스의 열성팬인 그는 와병중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 나타난 루 게릭처럼 말했다. “나는 운이 매우 좋은 사람이다.”

그는 선거전에서 벗어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하고 라지오는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마냥 기쁜 듯했다. [뉴스위크=Howard Fineman, Debra Rosenberg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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