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악의 상황 대비한 외환정책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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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계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루비니 교수는 “통제불능한 상태로 가고 있다”고 한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유럽발 재정위기가 은행위기와 실물경제위기로 확산되고 있는 건 분명해졌다. 재정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유럽의 3대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이 어제 3단계나 떨어졌다. 또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제시한 재정적자 목표치를 달성하기가 힘들다고 선언하면서 국가부도 가능성이 커졌다.

 유럽 재정위기는 세계의 금융위기로 전이되고 있다.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많이 갖고 있는 유럽과 미국 은행들이 위험해졌다. BOA와 모건스탠리, 벨기에 덱시아은행 등의 구조조정 얘기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아시아 등 다른 나라의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것도 이들 은행의 자금 회수 탓이다. 재정 및 금융위기는 다시 실물경제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신용경색과 정부지출 감소로 미국과 유럽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4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욱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나마 세계경제의 버팀목이 돼주던 중국마저 감속 성장하고 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대외의존도와 자본시장 개방도가 높은 우리 경제로선 매우 우려할 국면이다. 자칫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환율이 급등하고, 외환 부족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물론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정부 주장은 분명히 일리가 있다. 외환보유액이 3000억 달러나 되고 단기 외채는 1500억 달러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안심할 계제는 아니다. 유럽발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면 외환보유액만으로는 충분한 방파제가 될 수 없다. 최후의 보루로 최소한 2000억 달러는 들고 있어야 한다면 기껏 쓸 수 있는 돈은 1000억 달러 남짓이다. 특히 우리 경제가 저성장시대에 접어들고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되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는 있어야 한다. 차제에 외환시스템과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기를 당부한다.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있어야 한다. 비상경제대책회의나 위기 극복 컨트롤 타워만으론 안 된다. 이번에도 우리나라의 주식과 외환시장이 외부 충격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게 입증됐다. 현금자동인출기(ATM)라는 오명도 다시 등장했다. 이런 걸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으로 토빈세가 있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고 나갈 때 일정액의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국제 신인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로 토빈세 도입을 반대해 왔다. 하지만 3년 전 금융위기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강만수 회장이 지금은 토빈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도입했던 은행세를 강화하는 방안도 있다. 그 어떤 것이든 ATM이란 오명을 벗어 던지기 위한 방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