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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 없는 홍콩, 웬 와인 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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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소장

홍콩에는 포도밭이 없다. 포도주가 생산될 리 만무다. 그럼에도 홍콩은 아시아의 ‘와인 허브(포도주 중심지)’다. ‘와인 없는 지역에 웬 와인 허브?’ 홍콩의 와인산업 취재는 이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시내 중심지의 알렉산드라하우스 지하 1층에 자리잡고 있는 포도주 전문 매장인 ‘폰디 푸드&와인’. 이곳 메니저 아이리 웡은 그 질문에 ‘와인 펀드가 답’이라고 말했다. 돈 있는 곳에 정보·사람·상품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아시아에서 와인 문화를 소화할 수 있는 곳은 자유항 홍콩밖에 없다”는 말도 했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은 아니다. 홍콩이 ‘와인 허브 프로젝트’에 나선 것은 2008년. 평균 80%에 달하던 와인 수입 관세를 그해 완전 철폐했다. 덕택에 와인 수입량은 매년 40~80%씩 늘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와인 수입 창구로 부각된 것이다. 정부가 직접 마케팅에 나섰다. 킴메이 호 상무경제발전국 비서장은 “프랑스·미국·호주 등을 돌며 와인 제조업체를 끌어들였다”며 “홍콩에 오면 아시아인을 만날 수 있다는 홍보가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와인 축제를 유치해 매니어들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다음 달에는 와인산업 정상회의로 통하는 ‘와인 퓨처 2011’이 홍콩에서 열린다.

 ‘차이나 머니’도 가세했다. 와인 투자에 눈을 뜬 중국 거부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홍콩은 세계 최고의 와인 경매 도시로 등장했다. 2010년 홍콩의 와인 경매 거래액은 약 1억6400만 달러로 뉴욕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이뤄진 한 경매에서는 1990년 프랑스산 ‘로마네 통티’가 29만7400달러(약 3억5000만원)에 낙찰돼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같은 상품류 경매로서는 최고가다. 서울옥션의 이소영 홍콩법인장은 “치열하게 진행되는 경매의 경우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은 항상 중국인”이라고 분위기를 전한다.

 와인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산업이기도 하다. 홍콩에는 약 3350개의 와인 관련 업체가 활동하고 있다. 세계 와인 관련 업체들이 속속 홍콩으로 몰려들면서 고급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허브의 힘’이다.

 우리에게도 없지 않다. 전 세계 자유무역의 중심축이 되겠다는 ‘FTA허브’가 그것이다. 그 꿈은 유럽과의 FTA 협정 발효로 한층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제 한·미 FTA다. 곧 국회 논의가 시작된다. 쉽지 않아 보인다. 여야는 또 한번 충돌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당 지도부에게 ‘홍콩 와인 바에 모여 포도주 한잔을 마시며 머리를 맞대라’고 권하고 싶다. 관세 철폐를 통해 와인 황무지를 와인 허브로 만든 홍콩의 힘을 느껴보라는 얘기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