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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체조 세계 11위’ 손연재가 사랑받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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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호 30면

손연재(17·세종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국민요정’ 김연아(21·고려대)를 넘어설 기세다. TV 광고를 접수하다시피 했던 김연아는 요즘 잘 보이지 않는다. 그 틈새를 손연재가 파고들고 있다.

정영재 칼럼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의 세계 최강자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뛰어나고 끼와 화술도 탤런트 못지않다. 하지만 김연아가 사랑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이고, 겨울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려 국민을 기쁘게 했기 때문이다.

손연재는 세계 최고 선수는 아니다. 9월 24일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열린 세계리듬체조선수권대회에서 11등을 해 내년 런던올림픽에 나가게 됐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손연재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앳된 외모 때문일까. 매스미디어에서 ‘작심하고’ 띄워주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요즘 사람들이 스포츠를 소비하고, 스포츠 스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김연아와 손연재에겐 공통점이 있다. 아름답고 창조적인 움직임을 만들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장르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다. 피겨스케이팅과 리듬체조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게 음악과 무용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에 축구와 권투에 열광했다. 남성적이고, 힘이 넘치고, 격렬한 운동이다. 상대를 꺾어야 내가 이긴다. 골을 넣어야 Goal(목표)을 달성하고,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쓰러진다. 그래서 태클도 하고, 때로 반칙도 하고, 속임 동작도 써야 한다. 필연적으로 부상이 따르고, 경기 중에 목숨을 잃는 사고도 가끔 벌어졌다.

물론 축구와 권투는 매력적인 스포츠다. 열광적인 팬들도 많다. 그런데 축구와 권투가 지배하던 스포츠 영역에서 피겨와 리듬체조 같은 종목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상대와 싸우는 종목’이 ‘나 스스로와 싸우는 종목’과 공존하게 된 것이다.

지난달 끝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통해 “육상의 참맛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육상도 경쟁자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 스스로 단련해 기록을 만들어 나가는 종목이다. 육상에서는 몸싸움이 허용되지 않는다. 남자 110m 허들 결승전에서 다이론 로블레스(쿠바)가 류샹(중국)의 팔을 살짝 치는 장면이 TV 카메라에 잡혔다. 로블레스는 1등으로 들어왔지만 실격됐다. 사람들은 정직한 땀을 통해 가장 빨리 뛰고, 가장 높이 나는 육상선수들에게 열광했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견제하는 작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에게 배정된 레인을 따라 가장 빨리 헤엄치면 된다. 어떠한 반칙도 허용되지 않는다. 육상의 우사인 볼트도, 수영의 박태환도 부정출발을 해 실격당한 경험이 있다.

‘상대를 꺾어야 하는 종목’ 못지않게 ‘내가 만들어 나가는 종목’도 엄청난 자기단련을 요구한다. 손연재는 이번 여름에 러시아 대표팀과 함께 크로아티아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섭씨 3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하루 8시간씩 운동을 했다. 러시아 코치들은 선수들의 체중을 100g 단위로 체크했다.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손연재에게 살이 너무 쪘으니 당분간 과일만 먹으라고 했단다.

손연재에게 콤플렉스가 뭐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발이에요. 발이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너무 못생겨서 맨발로 신발을 신을 때 신경이 많이 쓰여요. 그런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 할수록 발은 못생겨지니까요. 그래서 콤플렉스인 동시에 제가 노력을 많이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때론 제 발을 보면 긍지가 느껴집니다.”

살다 보면 남과 경쟁해야 하고, 남을 꺾고 넘어야 내가 일어설 수 있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남의 실패와 실수를 통해 올라서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남들이 보든 안 보든 꾸준히 자신을 단련하고 장점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얼굴만 예쁜’ 손연재가 ‘얼굴도 예쁜’ 정상급 선수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좋아한다. 손연재의 말 매무새가 예쁘고 야무지다.

“저는 진화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내년 올림픽에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최대의 노력을 쏟아 부을 거예요. 아직 저에게는 더 노력하고, 더 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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