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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열네 살의 세계적 환경·평화운동가 조너선 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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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태 여파가 가시지 않은 지난해 8월. 열세 살짜리 환경운동가가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제안을 했다. “비무장지대(DMZ)에 남북한 어린이들이 만나서 놀 수 있는 밤나무 숲을 만들어 주세요.” 1년 만에 답이 왔다. 지난달 10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는 “이 제안을 숭고한 평화운동으로 생각한다”며 조건부 환영 입장을 밝혔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너 같은 청소년이 나에게 희망을 갖게 한다”며 격려 편지를 써 보냈다. 소년은 내친김에 ‘세계 어린이 평화의 날’을 만들기 위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와 법안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도 어찌나 수줍고 겸손한지.

창간 이래 최연소 인터뷰이, 한국계 미국인 조너선 리(14)를 만나봤다.

글=이소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꼬마 환경운동가’로 유명해요. 언제 시작했나요.

 “2007년, 제가 열 살 때부터요. 아마존 밀림이 벌목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마음이 아파서 환경보호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조너선이 그린 ‘고 그린맨(Go, Green man)’은 고 그린맨과 주인공들이 지구를 오염시키려는 ‘공해박사’ 등 악의 무리를 무찌른다는 내용으로 두 달 만에 조회 수 10만 건을 넘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직접 세계청소년연대(ICEY)를 만들어 이끌고 있다. 고 그린맨은 현재 1권이 출판됐으며, 2권도 세상에 나올 수 있길 바라고 있다.

●환경보호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다음 세대에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줘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어린이, 청소년들이 어떻게 환경을 지키는 지 알아야 해요.”

●한국에선 어떤 일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산림청과 함께 유엔사막화방지(UNCCD) 활동에 주력하고 있어요. 10월에 경남 창원에서 총회를 하거든요.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면 나무를 심어야 한다, 저개발 국가일수록 숲이 사라지고 토지가 메말라 어린이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 리더들에게 편지로 보내고 있어요.”

●독도 환경보호 운동도 하던데요.

 “독도에 살던 바다사자가 멸종됐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지난달에 실제로 가 봤는데 깊고 푸른 물빛이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꼭 바다사자가 돌아오게 하고 싶어요.”

●한국의 환경보호 수준을 평가한다면.

 “어렸을 때 서울에 왔을 때만 해도 매연이 심해서 숨쉬기가 불편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공기가 훨씬 깨끗해졌어요. 곳곳에 나무도 많고요. 특히 어디서나 재활용이 잘 되고 있어서 미국에 한국의 패스트푸드점이나 식당이 재활용하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어요.”

●본인은 어떤 노력을 하나요.

 “되도록이면 걸어 다니고 자전거를 타요. 지금 살고 있는 미시시피주에는 산책로나 자전거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거든요. 차 탈 일이 있으면 꼭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고요.”

●환경운동을 하느라 학교까지 관뒀다면서요.

 “미국에서 5학년까지 사립학교를 다니다가 지금은 홈스쿨링을 해요. 강연이나 행사가 많아서 좀 더 자유롭게 공부 스케줄을 잡으려고요.”

●누가 가르쳐 주나요.

 “아빠, 엄마가 가르쳐 주시고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을 몇 개 들어요. 요즘엔 버클리 대학에서 운영하는 물리학 강의를 듣는데 아주 재미있어요.”

 이쯤 되면 아들보다 홈스쿨링을 단행(?)한 부모가 더 대단하다. 조너선과 동행한 아버지 이경태씨에게 ‘아들의 공부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경태씨는 “욕심 같아서는 다 잘했으면 좋겠지만 한 가지만 잘해도 좋다”며 “자식이 좋아하는 걸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했다. 다양한 교육적 가치가 인정되는 미국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교사인 어머니는 환경활동 콘텐트에 대해 조언해 주고 화가인 아버지는 세계 이곳저곳으로 아들과 여정을 함께한다고. 그러고 보니 조너선이 솜씨 좋게 환경 만화를 그려내는 게 이해가 간다. 요즘엔 한국말 공부와 뿌리 찾기에 열심이다. 조너선의 한국 이름은 이승민. 진성 이씨, 퇴계 이황의 방계 후손이다. 올 추석엔 도산서원과 퇴계 종택을 방문하기도 했다.

●종가집에 가 보니 어때요.

 “미국 기준으로도 굉장히 규모가 큰 집이었어요. 퇴계 할아버지의 직계후손도 만났고요. 한국의 전통가옥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자연환경을 거스르지 않고도 품위 있고 당당한 느낌이랄까?”

●환경운동을 하다가 왜 평화운동을 하게 됐어요.

 “200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부터 세계 평화에 관심이 생겼어요. 도대체 두 코리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전쟁이야말로 지구와 환경을 파괴하는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했어요. DMZ를 평화의 밤나무 숲으로 꾸미고, 3월 21일을 ‘세계 어린이 평화의 날’로 만드는 게 제 목표예요.”

●왜 3월 21일이지요.

 “그날은 새봄이 시작되는 ‘춘분’이고 둘(2)이 하나(1)가 되는 통일의 상징으로 풀이될 수도 있어요. 1년에 이날만큼은 남북한 어린이가 만나서 마음껏 우정을 쌓게 하고 싶어요. 우연이긴 하지만 1963년 3월 21일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평화행진을 시작한 날이기도 해요.”

●평양에 가 본 느낌은 어땠어요.

 “정치인들은 무서웠지만 일반 시민들은 아주 예의 바르고 순수했어요. 한국과 말이 같고 옷(한복)이 같아서 금방 친해졌어요.”

 조너선이 아이디어를 낸 ‘3월 21일 세계 어린이 평화의 날’ 제정 및 남북한 어린이 교류화합추진 법안은 현재 남경필(한나라당)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주축이 돼 결의안 초안이 만들어진 상태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나요.

 “계속 환경운동을 하고 싶어요. 언젠가 세상 사람들에게 좀 더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한반도를 중심으로 평화운동도 계속 해나갈 거예요.”

●한국 친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안녕, 친구들아! 키가 얼마나 크든, 얼마나 작든 상관없어. 아주 작은 일이라도 환경에는 모두 큰 도움이 돼. 혹시 밤에 전등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켜 놓고 자지는 않니? 양치할 때 계속 수도꼭지를 틀어 놓지는 않고? 오늘부터 이런 몇 가지만 마음먹고 지켜 봐. 우리가 어른이 되면 훨씬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지낼 수 있을 거야!”

j 칵테일 >> 오바마 대통령, 저를 툭 치며 ‘헤이~’ 하던걸요

조너선은 웬만한 외신기자보다 더 많은 국가원수들을 만났다.

●만나본 정치인 중에 인상 깊었던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요. 때론 할아버지처럼, 때론 친구처럼 절 안아주셨어요. 무엇보다 그 만남을 계기로 세계 어린이 평화운동을 하게 됐어요. 대통령 할아버지는 남북한 사이가 평화롭기를 무척 바라셨어요.”

●미국 정치인들은 어떤가.

 “힐러리 클린턴을 만났을 때는 유난히 보디가드들이 많아서 좀 힘들었어요. 하지만 2008년에 처음 만난 오바마 대통령은 아주 친절했어요. 저를 툭 치면서 “헤이~” 하고 먼저 말을 걸었죠. 알고 보니 제 바로 옆에 서 있었는데 키가 너무 커서 제가 못 보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거예요. 미셸 오바마는 환경보호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어요. 자신은 언제나 냉장고 문을 재빨리 단단히 닫는 걸 실천한다고 했죠.”

●2009년엔 이명박 대통령도 만났다던데.

 “녹색성장체험관 개관식 때 초청을 받았어요. 그린 에너지나 그린 교통 등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특히 청계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어요. 저는 물을 워낙 좋아하는데 더러운 하수를 깨끗한 시내로 바꾼 아이디어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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