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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아들이 야구 그만둔다고 했을 때 최동원은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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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시구를 하고 있는 고 최동원씨의 아들 기호씨.

짧은 머리에 검은색 정장 차림의 아들은 비로소 웃었다.

 30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최동원의 날-등번호 11 영구결번식’ 행사장에 나온 고(故)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의 외아들 기호(21·군 복무 중)씨는 “아버지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행사를 열어준 부산시민과 롯데 구단, 팬들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행사를 위해 낮 12시 경기도 파주에 있는 부대를 출발해 오후 5시40분쯤 사직구장에 도착했다.

 기호씨는 고인을 자상한 아버지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건강해라”였다. 아들은 육군 1사단 11연대에서 복무 중이다.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이등병이다. 그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휴가를 신청해 임종을 지키다 이 말을 들었다.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은 최 선수의 마지막 말은 아들의 건강 생각이었다.

 아들은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야구를 시작해 아버지 속을 썩였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야구가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며 반대하다가 아들의 뜻을 존중해줬다. 그러나 외야수로 뒤늦게 시작한 탓인지 방망이가 시원치 않았다. 그래서 투수로 전향했으나 실패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깨끗하게 접었다. 그때도 아버지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리고 “남다른 특기를 가져라”고 권했다. 아들은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일본 도쿄 데이쿄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1학년에 재학 중 군에 입대했다.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를 하고 싶어 경영학을 택하자 아버지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고 한다. 아들은 “운동선수들의 광고출연을 연결해주고 편하게 운동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롯데장학재단은 기호씨에게 4년치 장학금을 전달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17일 전인 8월 28일 마지막으로 다섯 개의 공에 사인을 했다. 휴가 나온 아들이 “부대 동료들이 아버지 사인볼을 갖고 싶어한다”는 말을 전하자 힘 없는 손에 힘을 줘가며 사인을 해줬다. 기호씨는 “무엇을 하든지 다 믿어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야구선수뿐 아니라 아버지의 역할에도 충실했던 것이다.

부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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