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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31> 최경주와 양용은, 파머와 니클라우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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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최경주와 양용은. 모두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산다. 두 선수의 집은 차로 5분 정도 거리라고 한다. 먼저 정착한, 존경하는 선배 최경주를 양용은이 따라갔다. 두 선수는 집 거리만큼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같은 대회에 나가더라도 두 선수가 함께 이동하거나 연습 라운드를 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한국에 오는 일정도 엇갈리게 짜여 있다. 2009년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에게 첫 역전패를 안기며 메이저 우승을 하면서 그의 위상도 훌쩍 커졌기 때문이다. 거물끼리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즐겁게 수다를 떨기는 어렵다. 약간의 경쟁심도 있고, 친한 사이일수록 별것 아닌 일에 더 서운함을 느낀다.

골프에서 가장 큰 라이벌 관계는 아널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였다. 열한 살 터울인 두 선수가 필드에서 경쟁한 시기는 길지 않다. 그러나 최고 골퍼의 상징적 자리를 놓고 수십 년간 라이벌로 지냈다. 서로가 한 샷은 물론 만든 골프장, 그들의 이름을 걸고 만든 대회를 놓고 사사건건 경쟁했다. 자가용 비행기의 크기에서도 둘은 질 수 없었다.

골프 실력은 니클라우스가 낫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격적 경기로 이길 때나 질 때나 드라매틱하고 쇼맨십이 좋은 파머를 훨씬 더 좋아했다. 치약부터 렌터카, 항공사까지 수많은 회사가 그를 광고 모델로 썼다. 파머는 외모가 영화배우 제임스 딘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파머의 로고인 우산을 붙이면 어떤 제품이든 팔렸다. 반면 니클라우스는 프로에 처음 데뷔하던 20대에 꽤 뚱뚱해 보였다. 머리까지 짧게 깎아 추한 인상이었다. 못생긴 니클라우스가 파머를 자꾸 이기니 사람들이 더 그를 싫어했다.

당연히 니클라우스는 실력이 좋은 자신보다 파머가 더 대우받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파머는 니클라우스가 매우 건방지다고 생각한 것 같다. 파머는 사석에서 니클라우스를 ‘돼지’라고 불렀다. 니클라우스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로고인 황금 곰의 다리를 길게 바꿨다. 외모에도 신경 써 30대가 되어서는 스타일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파머에게는 돼지였다. 어느 날 친한 기자가 파머를 만날 때 니클라우스의 황금 곰 로고가 달린 옷을 입고 간 적이 있다. 파머는 로고를 잡아 비틀면서 “이 돼지 옷을 입고 뭘 하려는 거냐”고 했다. 훗날 그 기자는 파머에 대한 책을 펴내면서 이 일화를 썼다. 파머는 출간 직전 이 사실을 알고 니클라우스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고 한다. 니클라우스는 웃으며 별일 아니라고 일을 마무리했다. 파머와 니클라우스는 서로 질시하고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존경심을 잃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둘은 코스 디자인을 놓고 서로 비웃었지만 함께 골프장도 만들었다.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했기 때문에 별 트러블 없이 일이 잘 마무리됐다. 미국 플로리다주 명예의전당 바로 옆에 있는 코스다. 두 전설이 함께 만들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

니클라우스와 파머는 냉전 중에도 국가 대항전인 라이더컵에서는 해빙을 하고 뜨거운 팀워크를 나눴다. 라이벌로 지내던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은 라이더컵에서 한 조로 나가면 성적이 나빴지만 니클라우스와 파머는 함께 팀을 이루면 좋은 성적을 냈다.

미국과 세계 팀의 골프 대륙 대항전 프레지던츠컵 자동 출전자 10명에 한국 선수 3명이 포함됐다. 최경주와 양용은, 김경태다. 그동안은 호주와 남아공 선수들이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올해는 한국과 남아공, 호주가 똑같이 3명씩이다. 최경주는 “한국 골프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프레지던츠컵 선발을 계기로 최경주와 양용은도 해빙을 하는 것 같다. 최경주는 “투어 챔피언십 대회를 앞두고 함께 연습 라운드를 하면서 프레지던츠컵에서 어떻게 조 편성을 할지 논의했다”고 한다. 포볼과 포섬 방식으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에선 최경주와 양용은이 한 팀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양용은은 최경주가 주최하는 ‘CJ인비테이셔널 호스티드 바이 최경주’ 대회 출전도 고려하고 있다.

최경주는 양용은이 더 큰 무대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정신적, 물질적으로 도움을 줬다. 양용은은 메이저 우승 후 최경주 재단에 성금 1억원을 냈다. 최경주가 요즘 불끈 힘을 내는 것은 먼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양용은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열정을 다시 깨웠다는 해석인데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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